50호2020년 [시] 안반데기 외 9편 / 양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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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쏜살같이 달린다
잠깐이 하루가 되고 또 다른 하루가 된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것이다
무언가를 붙잡을 틈도 없이 세월도 나이도 다 지나간다
언젠가는 땅들에게 한 줌 거름이 될 몸
그 몸을 한 바퀴 돌고 나온 탁한 숨결
파란 허공에 내뱉으며 나는 아직 하늘과 당 사이에 살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나간 옛날은 그리움을 주지?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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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데기
안반만 한 내 땅이라도 갖고 싶었을까
그 험한 나무뿌리 거친 돌들
뽑아내고 골라내며 땅을 일구었단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좋지 않은 기후에도
농부들의 땀과 간절함이 흙 속에 거름 되어
시야가 끝나는 저 너머까지
초록 빛깔 밭들 경사를 이루고
고랑고랑 배추가 자란다
바라보는 이들 마음에 시원함을 채우며
줄을 맞춰 나란히 나란히
농부들 기쁨 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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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
산이 분홍 꽃다발을 안고
봄을 맞는다
나무들도 톡톡 연둣빛 싹을 틔우느라
부산하게 바쁘다
산 중턱 미루나무 가지에는
겨울을 난 집을 고치는지
까치들이 정신없이 들고난다
한 발짝 미리 내디딘 이른 봄
쑥부쟁이가 올라오고
개나리도 노란 방울
주렁주렁 매달았다
조용하면서도 소란스러운
봄의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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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눈의 즐거움을 따라
행복을 마음에 저장하는 것
사방이 어둠침침하다
내 마음도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환하게 푸르름을 드러낸다
어느새 날개를 펴고
저 창공으로 날아가 버린 내 마음
여행이란 나를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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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라신다
오랜 세월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 욕심 칭찬 자랑
그만 내려놓으라신다
요즘 왼쪽 손목이 아프다
반만이라도 내려놓으라시는 걸까
이만큼 살았으니
벌써 내려놓았어야 할 짐들
젊은 날을 반성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자꾸나
두 손 다 가벼이 하고
돋는 해의 아침 빛같이
황홀함으로 이별해 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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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 하고 싶다
내 머릿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 있다
지나간 잘못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고
다가오지도 않은 일 불안해하며
무의식적으로 해도 되는 일
의식 속에 담으려 한다
단순하게 살겠다 다짐하면
더 많아지는 생각
지나간 일에 대한 감사는 많은데
미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린다
멍때리기 하고 싶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당연히 내일이 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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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타이루
하얀 타이루 벽에 물을 뿌리면
청아한 맑은소리 들린다
저 아름다운 소리와
깊은 비색을 쫓느라
흙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버리고
그 삶이 서서히 스러져 갔던
고려청자 도공들이 생각난다
어디론가 튕겨 나갈 듯한 신비한 그 소리
어느새 내 마음도
세상 밖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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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고 싶다
세상에서 밀려든 흙탕물
내 안에 고여 있던 냄새나는 물
섞이고 섞여서 구정물 천지다
너무도 쉽게 튀어나오는 미운 마음
살아도 살아도 줄지 않는 욕심
늘 남들보다 높아지고 싶은 심사
모두 모두 뭉뚱그려 뜨거운 용광로에 넣었으면
세상 구석구석 흐르고 흘러
누구라도 맑은 마음 들여다볼 수 있는
반짝반짝 생명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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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2
깜깜함만이 아닌 밝음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울긋불긋 고운 꽃 푸르른 나무를
마음껏 사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못마땅한 것도 있지만
좋은 것이 더 많아서
감사합니다
어디엔가 숨겨진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을
마음껏 보게 하소서
그래서
더 큰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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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오늘일까 내일일까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게 두려워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
누런 이파리 몇 개
부들부들 떨며 매달려 있다
살아온 삶은 생각의 뒤편에서 꿈틀거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은 왜 그리 또 바쁜지
생각을 버리고 무덤덤하게 살다가
두 손에 감사만 가득 담고 떠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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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색깔
봄은 노란색으로 오나 보다
시냇가 버드나무 싹들이
노랗게 터져 나온다
봄은 분홍빛으로 오나 보다
앞산 뒷산이 온통
분홍 옷을 입었다
또 설렘으로 오나 보다
아침 햇살 별스럽게 눈 부신 날
봄옷 차려입고 마실 떠나고 싶어진다
봄의 몸속에 숨기운 씨앗 한 톨
내 마음속에서 톡 터뜨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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