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50호2020년 [시] 섬강 노을 외 9편 / 김영섭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40회 작성일 20-12-21 18:08

본문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도

나그네 아니던가?


삼천대천에는 타동이 무수하다 들었는데

절친 그대뿐이네.


천방지축의 내 시와 노래를 들어주고

바람지어 머리칼 쓰다듬으니

그만이다.


바람의 소유권을 내게 준다면

꽃 점을 보아 주리라.


---------------------------------


섬강 노을



평생의 큰물이 간다.
실개천마다 연어 떼가 춤추며 회귀한다.
불놀이야.


은두꺼비 서식지
국토 종주의 은섬포 흥원창
섬강 노을이 은빛이다.


연어의 입질에 낚싯줄이
탱탱거리며 따다닥
손맛이 아리수다.


전쟁과 질병 태풍과 홍수가
비껴가는 고을 横成의 성벽을 돌아
두물머리로 가는 내륙의 바다
백 년을 기다린 황룡의
비상을 몇 날 바라보았다.


------------------------------


맛깔스러운



어릴 적 겨울은 너무 추웠다.
사타구니까지 쌩 바람이 올라왔다.


새벽 방구들이 식으면
홋바지 챙겨 입고
여물 끓이기는 내 몫이었다.


소죽 퍼주고 나서
화로에 고구마 몇 덩이 굽고 허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마솥 바닥에 남은 콩짜가리 건져 먹었다.


장작불 화로를 방 안에 들이면
어머니는 청국장을 달이고
광에 매달린 뒷다리 비계를 대패삼겹살로 빗어
새우젓 간을 맞추고 부스러기 부치기를 넣어
조반을 먹었다.


시렁에 감추어 둔 군고구마 까무룩 하고
농목 가기 전 햇살이 퍼질 때 까지
배 깔고 늘어져 꿀잠을 잤다.


-------------------------------


더 맛깔스러운



얼음 배 잘라 작살로 건진 물고기들은
삭신이 저려 왔을 몸부림으로 얼음장에
암각화를 그리고 있다.


쉬리 개구리 툉가리 모래모치 미꾸리
동자개 뚜꾸 피라미 등등
덤부사리 황덕불 놓고
알불이 남을 즈음 석쇠 위에
놈들을 구우면 펄쩍거리다 피우피우
토해 내는 내음이 노릇노릇 퍼져간다.


카-아, 찬 소주에 샛강 맛을
왕소금 찍어 어적어적
바지춤에 이빨 가는 고드름 달고
어스름에 구렁이 다락 논둑을
투덕투덕 헤어졌다.


---------------------------------


그보다 더 맛깔스러운



어린 시절은 온종일 어울려 놀아야
제맛이다.


동창은 빳빳한 흰색 칼라에 빨강 구두 신고
스커트 날리며 읍내 여중에 날아다니는데
서당에 소학이나 읽으며
소 밥 챙기고 땔나무 베끼는 나는
쉰 개밥에 도토리다.


사나흘의 동맹 휴업과 천렵으로
온 동내가 뒤집혔다.


용서받을 내심으로 어두운 귀갓길
담치기 뒤뜰에 숨을 졸였으나
호령하는 부름에
머리카락이 싸리울이다.


다듬잇돌 위에 서서 피가 터지도록
버티며 소리쳤다. 더 이상
저려 오는 아픔에 눈물도 말랐다.


중등교사로 사십 년 가까이
고까운 유랑의 이삿짐과 방랑을 접었지만
제자들을 슬프게 매질한 기억은
없다.


----------------------------------


소들의 노예



인간이 소들의 노예다.
중간 유통업자들의 마진을 위하여
기름 투바기 마블링에 집착하는
비만의 노예다.


유일한 한국의 유전인자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동물
절반이 넘는 수입 곡물과 조악한 볏짚을 꾸겨 넣고
반추와 발효를 거듭하는 이빨과 네 개의 위
저작의 맷돌은 쓸 만하다.


코로나 시대의 고갯길을 넘는 동안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부채가 예산의 두 배로 늘어나도
남의 돈 거두어 복지의 탈춤을 추며
표를 몰아가는 형국과 닮은꼴이다.


마음먹고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사 먹었는데
둔갑한 수입 쇠고기였다.


-----------------------------------


소일거리



표지가 낡은 책을 구입하여 먼지를 털어 내고
곰팡이 냄새를 지우며 책장을 넘긴다.
세심으로 수석을 어루만지듯
음반도 온수에 세제를 풀어 헹구고 말리고
바지를 꿰매고 배접에 다림질까지
습도와 온도의 비밀스런 접점을 찾아
수장고를 짓는다.


무엇하자는 건가?
갈고 닦아도 마음이 허접하다.
음감은 치매 걸리고
보이는 피사체가 가물거린다.
듣지 않아도 울리는
그리지 않아도 보이는
아 가을인가?


꽃은 어찌하여
떼를 지어
홀로
저만치 피었다가
쉬이 지당가?


-----------------------------------


기우



중국의 미세먼지 발암물질을 마시면서
외국 발 황사라 둘러대는 연유가 무엇인가?


일본산 기계 공구로 일하며
아일랜드 스카치위스키를 마시고
러시아 명태를 덕장에 걸며
참치 캔을 따서
독일 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캐나다 콩나물국으로 해장하고
세네갈 갈치와 노르웨이 고등어를
구워 먹는다.


영국 홍차를 마시고 프랑스 향수를 뿌리고
우즈베키스탄 여인과 2세를 구상하며
탱고와 삼바를 즐긴다.


내열성 바이러스가 오장육부를 헤집으니
국적이 모호해진다.


--------------------------------


하늘이 언제 닫혀 있었나?



특보랍시고 특종이라고 단독 취재라며
호들갑 떨고 재탕하는 재난방송국의 귀태를 어쩌랴


말초신경은 오래전에 트라우마에 잘려 나갔다.


고목이 부러지고 과실은 떨어진다.
터지고 무너져 떠내려간 영혼들에게
미안하다.


까발리고 거역하니 사약이다.


하늘이 언제 닫혀 있었나?


크리스토퍼 나이트를 징역형에 처한
일탈의 사회화가 빚은 참사를 어쩌랴.


깨진 바가지 양말만 적시고
그 나물에 그 밥상
재탕 방송국.


---------------------------------


하슬라 신화



강릉 강남의 주산이
월대산이다.


쪽발이가 조공을 하역하는 강문에
옥양목 나부끼고
대관령 서슬 퍼런 눈발이 드리워
달뜨는 대밭
술잔 부딪는 소리 야무지다.


석호에 달이 질 때까지
봉화를 올리며
신고주와 하사주는
키-케이 키-케에이 짜라-짜라 짜-자짠


쭐럭거리는 검정 고무신 동동주는
마셔도 그만 솔밭에 부어도 불문가지
목대 크고 선배에게 선선하면
터진 구름 사이 달빛이 따사롭다.


텃세 깊은 솔향
하슬라 神木의 신화


월대산 신고


-----------------------------


염천



소금 장수는 왜 자동차 윈도우 브러시 아래서
눈 뜨고 죽어 갔을까?


낮 한 자루 제대로 벼리지 못하는 나라를
조문하고 돌아가는 길목에
양심만큼은 물 향이 그리웠을까?


물방개들이 추도 미사를 집전하며
감국 한 떨기 피운다.


피부와 눈동자가 이국적인 잡종들의 시위 속에
고라데이를 질주하는 비사래 속에


자전거 타고 삽을 든 농부가
염천의 매듭을 풀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