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호2020년 [시] 정방사 해우소 외 2편 / 이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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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뫼』 50주년 함께한 세월에 의관을 갖추고
공손히 절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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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사 해우소
금수산 절벽 아래 매달린 듯 계시다
정방사 해우소
창틀에 진경산수를 턱 하니 내다 거는
갤러리 그런 느낌으로
월악산 자락도 청풍호 물바람결도
무시로 드나드는 뒷간에서
볼일 보신 분 아시겠지만
뒷내도 곰삭아 어찌나 순하던지요
전혀 그래요 전혀
역하지 않은 도리어 흠흠 맡고 싶은 뒷내라니요
이 경이로운 어리둥절이라니요
정방사 자뜨락 길 따라 들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세상에서 제일로 맑은 뒷간
정방사 해우소에 볼일 안 계셔도
뒷내도 향그롭다는 걸
몸으로 만나 보시고
수채화 한 폭 덤으로 받아 가시는
인연 계시면 참 그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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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
능경봉 산 그림자 비친 통유리를
전력으로 날아오른 어린 물총새
머리 박고 혼절한 놈
살려 놓기에 이골이 난 안주인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신의 한 수
큰 새 서너 마리 붙여 놓으라 일렀더니
이후 무모한 불상사 없다 했다
오호라 이런 예방효과라니요
가짜에 치를 떨던 일 괜히 그래
정답 없음이 정답이기도 한 거
고마운 일 아닌가
스승은 도처에 계셔
물총새 어린 것
머리 박는 일 없으니
오늘 내 공부가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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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에 이르러
이른 새벽 대중목욕탕
비구니 스님 한 분
고요히 눈감고 가부좌로 계시네
나는 몸을 담군다
물살로 건너온 청정 산내 스미는 듯
이내 이쪽도 고요롭다
조심스레 등을 밀어 드렸더니
한사코 마다하는 내 등을 밀어 주신다
스님 제 겉 때 말고 속 때 좀 밀어주셔요
전생에 업장이 너무 깊어서 했더니
알고 있으면 반은 벗은 셈이라시며
물안개로 답하시네
그런가 반은 벗긴 셈이라고 반은?
그 반이 다른 이의 온전한 무게보다
더 할는지모르지에 이르러 속절없이 갇혔네
풀잎스치던 바람 한 올도 갈무리하고
얼비치는 하늘 한 자락도 갈무리하고
온 밤 뜬 눈으로 지새던
사랑, 그 독한 앙금도 갈무리하고
산고의 쾌락도 갈무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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