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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2020년 [축하의글] 축하의 글 / 김계남 (강원여성문학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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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11회 작성일 20-12-2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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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 동인 문학이 50집 출간으로 반세기를 엮어온 저력에 우선 먼저 경의를 표합니다.
속초는 제게 아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남편의 발령 임지였던 1998년부터 4년 동안 살았으니 때로는 속초를 다 안다고 만용을 부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 첫해에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시청 앞 바닷가에 위치한 개인 종합병원에서 병상 생활을 했는데 한발도 걷지 못하는 병실에서 바닷가 등대를 바라보며, 힘차게 오고가는 이들의 걷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도 선연합니다. 4개월 만에 퇴원하던 날은 벚꽃이 눈처럼 쏟아지는데 목우재를 넘어 설악산 입구에 낮게 드리운 벚나무 아래에서 목발에 의지한 채 벚꽃 한 송이를 얼굴에 부비며 새로 태어나 살아 있음을 확인했던 봄날도 있었습니다.
사택이 영랑호가 가까운 동향 아파트 고층이다 보니 자동으로 속초 앞바다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일출을 일상으로 맞으며 아침을 열고, 매일 걷는 다리운동을 위해 찰랑대는 영랑호변을 산책하노라면 은백의 머리칼을 날리며 걷는 노부부를 만나기도 했는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물가 안쪽으로 호위하며 챙기는 노년의 부부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가슴 뭉클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찾아간 신선봉 수바위 아래 금강산 말사인 화암사 란야원은 내 치유의 근원지였는데 숨어 앉은 하이밸리에서 계곡을 따라 잔잔한 산비탈을 타고 오르면 너무도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청량한 화암사 란야원 찻집이 있었습니다. 주인 보살님이 따라주는 송화밀차 한 잔 마시면서 아스라이 조망되는 속초 시내와 바다의 풍광은 일품이었습니다.
묻혀 있는 비경이 처처에 깔려 있는 속초를 외지에서 오는 직장 동료와 지인들을 가이드하며 해설사 노릇까지 톡톡히 해낼 때 놀라고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그들 모습을 보면서 진짜 속초시민인 양 괜히 으쓱해지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 설악산에 들어서니 그 붐비던 대관광지가 오직 나 하나만 전세를 낸 듯한 순간에 축복과 텅 빈 공간의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부처님 동상 앞 스피커 아래 홀로 앉아 듣는 불경 말씀들은 나를 향해 하는 소리 같아 묵상과 성찰로 피정을 하고, 비선대에 올라 부침개 한 장 먹고 돌아오는 길은 참 행복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신이 내린 대자연 속에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속초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특혜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아파트 같은 동 옆 라인에 지금 문학의 중추 역할을 하는 권정남 시인이 살고 있었는데 전연 모르고 살다가 지난 세월을 유추해 보니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진작 알았더라면 내 속초살이는 더욱 풍성했을 듯싶습니다.
우리 사는 삶이 문학이고 문학은 곧 삶을 풀어놓는 예지와 서정의 결정체가 아니겠습니까.
속초의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나의 작품 「화암사 란야원」 수필이 탄생해 문학상을 받았고 또 나의 안내로 그곳을 방문한 S시인은 그 찻집 「송화밀차」로 작품상을 받았으니 속초는 곧 문학의 산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동안 머물다 떠난 이들에게도 이처럼 감동을 주었을진대 태를 가르고 긴 세월을 속초의 대자연과 함께한 갈뫼 가족들은 작품 소재의 보고인 축복의 산ㆍ바다ㆍ강ㆍ호수에서 캐어낸 주옥같은 문학 50년의 뿌리들이 얼마나 깊고 크고 아름답겠습니까. 50년 역사 속에 어찌 애환이야 없었겠으랴만 칡넝쿨처럼 질기고 뿌리 깊게 산을 덮으며 영원히 뻗어나가는 『갈뫼』의 50집 출간에 찬사와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설악의 크고 작은 준봉들이 묵언으로 저마다의 자태와 색깔로 모여 설악의 위용을 드러내듯이 동인들의 창의적인 안목과 끊임없는 정진으로 『갈뫼』의 혼을 세상에 더욱 우뚝 세우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다시 한번 설악문우회 『갈뫼』 50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