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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2020년 [축하의글] 설악산 대청봉처럼 우뚝 선 강원문학의 산실 / 이영춘(전 강원여성문학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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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42회 작성일 20-12-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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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대청봉처럼 우뚝 선 <갈뫼>! 문학회가 벌써 50주년이라니 그 힘, 참으로 놀랍습니다.
속초 설악문우회 <갈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50년의 역사처럼 회원들이 굵고 묵직하다는 인상입니다. 침묵 속에 정중동(靜中動) 같은 그런 무게입니다. 그래서 설악의 바위들과 청청한 나무들만큼이나 신성하고 신뢰가 앞서는 문학동우회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다시 북쪽 해안도로로 2시간 정도 동쪽으로 달려가면 절경을 이룬 두이노(Duino)란 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 성에서 릴케가 쓴 시가 「두이노의 비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왜 문득 ‘설악산’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명산 아래서 신령스런 정기를 받아 설악문우회 <갈뫼>가 탄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연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에는 반드시 훌륭한 예술과 예술가가 탄생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와 있을 때 「관동팔경」을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고산 윤선도는 해남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를 창작했다고 하지않습니까?!
오늘 우리 강원문학과 문화의 한 축을 이룬 설악문우회 <갈뫼>도 ‘설악산 대창봉’의 정기와 그리고 넓고 푸른 동해의 기상을 받아 이렇게 한국적 문학의 뿌리를 내렸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설악문우회는 항상 바위처럼 말없이 묵묵히 각자 제자리를 지키면서 작품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껴왔습니다. 그 향기와 뿌리는 또한 동해만큼 깊고 설악산만큼 높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갈뫼> 문학회는 6.25 수복 이후 20년도 채 되기 전 1969년에 이미 문학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예술의 ‘혼’ 그 정신을 감히 누가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한때 우리는 ‘지방화’가 곧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뛰었던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설악문우회 <갈뫼>가 바로 그렇습니다. <갈뫼>는 참 훌륭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마 고, 운홍렬 소설가님의 안목과 배려, 그리고 후배 사랑으로 이룩해 낸 설악의 문학, 아니 강원문학의 뿌리가 된 줄로 압니다. 그분은 속초예총과 설악문우회 <갈뫼>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후배 양성은 물론 본인의 굵직한 작품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그분의 작품은 수복 이후, 실향민들의 애환을 그린 『갈매기 집』을 위시하여 장편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 등은 우리의 질곡한 역사의 큰 강물 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 후광으로 설악의 맑은 기상과 정기로 현재 활동하고 계신 모든 회원님들의 작품 또한 묵직하고 우수하다는 평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명감과 작가정신이 올곧고 치열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갈뫼> 문학회의 50년의 역사!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는 글을 써 나아가시는 『갈뫼』 문학의 뿌리인 문우님들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깊은 역사와 의미를 지닌 문학회는 <갈뫼>가 전국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이 땅에 새로운 문학의 창(窓)을 열었습니다. 그 정신과 예술의 혼으로 아직도 분단 조국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산가족과 그 사상의 바탕이 되는 문학의 뿌리로 『갈뫼』 문학이 곧 세계의 문학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또 기원드립니다. 분단의 문학에서 『갈뫼』만이 그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학은 곧 ‘체험’이라고 일찍이 릴케가 했던 말을 상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쌓아 오신 강원문학과 문화의 한 축(築)을 이룩하신 <갈뫼> 문학회가 더욱 튼튼하고 굳건하게 뻗어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세계적 문학의 산실이 이 설악산 대청봉 아래서 탄생되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큰 박수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