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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2020년 [축하의글] 『갈뫼』의 추억과 울림 / 윤재근(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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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193회 작성일 20-12-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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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뫼』의 세수가 50이라! 『갈뫼』가 지명(知命)의 나이에 이르렀네! 한 고을 문인들이 변함없이 50춘추를 문학의 연줄로 문향을 품어왔으니 이는 분명 놀라운 일이다.
속초시라 하면 사람들은 설악산-동해바다를 떠올리겠지만 내게는 『갈뫼』와 더불어 여러 문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갈뫼』를 받을 때마다 그 표지를 다독거리고 쓰다듬는다. 『갈뫼』가 맺어준 추억들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갈뫼』를 열어 속초문학을 마주한다. 지방 문예지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갈뫼』가 지방 문예지의 첫 번째라고 믿고 동인지를 넘어 꼭 읽어봐야 할 문예지라고 생각해왔다.
『갈뫼』와의 인연은 황금찬 시인께서 맺어주었다. 동성고등학교에서 황시인은 국어 선생님을 하셨고 나는 영어를 가르치며 교무실 바로 옆자리에 붙어 지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남을 칭찬하는 말씀만 하기로 유명한 황금찬 시인께서 하루는 아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추천해주고도 남을 시를 왜 추천해주지 않는지” 중얼거리며 노기를 띠고 있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추천인이 근 2년 넘게 가타부타 말이 없어서 시를 찾아왔노라” 하셨다. 시를 보니 황 시인 생각이 옳았다. “추천을 받아야 시인이 되는 세상은 한국밖에 없어요. 이 시들을 한꺼번에 『문화비평』에 발표해드리지요. 그러면 시인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나는 계간 『문화비평』의 주간이었는지라 확언해드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시인의 병풍」 외 다섯 편이 발표되었고 그로써 이성선 시인이 세상에 등단하여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황 시인께서 당신의 고향이 속초인데 그곳에는 문인들이 참 많다고 고향 자랑을 했었다. 그해 겨울 윤홍렬 작가께서 속초에 와 문학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와 『갈뫼』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윤홍렬 선생께서 그때 내게 준 『갈뫼』는 아마 3호였지 싶다. 『갈뫼』를 받고 목차를 보고 각 분야에 걸쳐 고루 문인들이 많구나! 놀랐었다. 그때 속초는 작은 도시였다.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놀랐고, 작품들이 높은 수준을 간직하고 있어서 속초의 문향(文香)에 거듭 놀랐었다. 그때 느낌이 지금도 선연하다. 윤 선생께서 『갈뫼』를 꾸준하게 발전시켜 속초의 문학이 빛나도록 정성을 다할 작정이라고 힘을 불끈불끈 주셨는데 그 정성과 열정이 걸걸한 목소리를 타고 흘렀었다. 속초가 있는 한 발간될 것이라고 갈파했던 윤 선생의 말씀을 『갈뫼』50호가 생생히 증명해주고도 남는다.
그날 밤 『갈뫼』 발간 모임이 있었고 윤 선생께서 일일이 참석자들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었지만 모두 문인들인지라 서먹서먹하지가 않았다. 당시 젊었던 분들은 이제 노년기를 속초 문인으로 누리고 있을 터이다. 그때부터 47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50호를 준비한다는 『갈뫼』가 이미 고인이 되신 윤 작가님 말씀대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장수 문예지로 수많은 작품들을 해마다 담아와 속초문학으로만 머물러 있음이 아니라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 우수함을 전파해온 셈이다. 해마다 『갈뫼』를 받아 왔으니 『갈뫼』와 내가 50년 지기(知己)인 셈이다. 『갈뫼』를 맞아 작품을 만날 때마다 나를 실망시킨 작품은 거의 없었다. 나는 덕담(德談)을 하지 않는 쪽이니, 의례 삼아 『갈뫼』를 예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갈뫼』 덕으로 속초는 설악산 동해바다 외진 곳의 관광도시로만 그치지 않고 문향(文香)이 짙은 문화도시로 자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갈뫼』가 전국으로 전파되어 수많은 외지 문인들이 『갈뫼』를 만날 때마다 속초의 문학이 속초의 문화를 드높여주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속초시민은 『갈뫼』의 위대함을 잘 모를 수도 있다. 본래 왕죽(王竹)은 제 고향 대밭을 떠나야 왕대로 대접받는다고 한다. 『갈뫼』가 속초를 벗어나 전국에 속초의 문향(文香)을 퍼뜨리니 속초가 문학의 뿌리가 깊고 따라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장이란 생각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갈뫼』 50호에 수록할 청탁을 받고 새삼 옛날로 돌아가 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황금찬 시인께서 속초와 인연을 맺게 해주었을 때 나도 30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갈뫼』 50호 원고청탁서가 나도 80대 중반을 넘어선 인생임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서천(西天)으로 가신 윤홍렬 작가-이성선 시인, 최명길 시인 얼굴들이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갈뫼』가 세 분이 떠났다고 슬퍼하지 말라 한다. 『갈뫼』가 변함없이 속초의 문향을 피워내 설악산 동해바다 속초의 문화를 줄기차게 드높이니 무척 찬란하지 않은가 되뇌게 한다. 인간은 가도 문학은 남아 영원하다. 변함없이 문학을 숨 쉬게 할 터라 속초의 문향과 속초의 문화를 넘치게 할 터이니 『갈뫼』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