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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2021년 [수필] 초원의 빛이여! 외 1편 / 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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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1,572회 작성일 21-12-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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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사춘기 시절 읽었던 시나 소설, 영화 속 캐릭터들과 마움 나누며 즐긴다. 가을 하늘처럼 순수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진부령 정상 폭설을 동반한 눈보라가 회오리 치는 걸 보았다.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이 사투를 벌이 듯 세상과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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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이여!



지나간 일이나 사물에 대한 기억은 세월이 가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동을 받은 예술작품이나 영상은 그 느낌이 오래도록 간다. 몇 년 후 그 작품을 다시 감상하면 그 느낌이 더 폭넓어진 듯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이유는 그동안 수십 년 살아온 삶의 연륜이 안목을 넓혀 주고 감상의 폭을 더 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나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시가 좋아서 수첩에 적어 다니며 외웠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영국의 계관시인으로 「수선화」와 「무지개」 등 주로 자연을 주제로 시를 쓴 계관시인이다.

그 무렵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 포스터가 시내 거리마다 붙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 제목하고 같아서 설레며 관람을 했다. 엘리아 카잔 감독으로 남자 주인공 웨렌 비티와 여주인공 나탈리 우드가 주연이었던 인상 깊은 영화였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 하는 주인공들의 가슴앓이와 영화 자막에 「초원의 빛」 시가 낭송되었던 기억이 난다.

유럽 여행 중 비행기 안에서 흘러간 영화를 우연히 보다가 <초원의 빛>을 보게 되었다. 세 시간 남짓 영화를 감상하면서 나는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수업시간 중에 고등학생인 여주인공 윌마(나탈리 우드)에게 선생님이 「초원의 빛」 시를 읽으라고 해서 읽다가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간다. 그후, 한 반 급우인 버드(워렌 비티)와 사귀게 된다. 대학 입시를 앞둔 두 사람은 풋풋한 사춘기 감성에 몰입하여 서로 사랑하게 된다. 명망이 높고 갑부인 버드의 아버지가 둘이 사귀는 걸 반대하여 끝내 둘은 헤어지게 된다.

윌마는 소박한 가정에서 어머니에게 예절 바른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버드와 헤어진 후 윌마는 자살을 시도하고 신경쇠약으로 2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지만 버드를 잊지 못해 그리워한다. 병이 회복된 후 정신과 의사와 결혼 날짜를 받아두고 첫사랑 버드를 찾아간다. 이미 결혼한 그는 아이 아빠가 되어 소를 키우며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냥 말없이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그리움과 회한이 스치고 지나간다. 윌마는 버드의 아내와 인사를 하고 그의 애기를 안아 본다.

한 시절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찬란하게 사랑했던 버드와 딱 한 번 재회한 후 사랑을 확인하지만 서로 다른 인생길을 가야만 했다. 그와 헤어지면서 그녀는 눈물 글썽이며 「초원의 빛」 시를 중얼거리며 떠난다. 그녀가 탄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섰는 버드의 마지막 모습에 가슴이 저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여주인공은 정신 질환까지 앓았고 결혼을 앞두고 그래도 못 잊어 그를 찾아갔다. 두 사람의 재회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영화나 책에서 아니면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생의 이슥한 나이가 되어 사춘기 시절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감상하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용서와 관용이 저릿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초원의 빛」 시에 빠져 있던 여고 시절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경북 봉화에 있는 오전리 약수 탕에 어른들 따라 몇몇 친구들과 갔었다.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두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갔다. 개울 옆에 민박을 얻어 이틀을 머물렀다. 건너편 산 정상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가고 골짜기마다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물놀이하는 아이들 소리도 자연의 소리로 들려왔다. 철분이 섞인 약수를 받아 쌀을 안치고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넋 잃은 듯 자연 풍광에 매료되었다.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개울에 친구들과 발을 담그며 놀다가 슬리퍼를 한 개 물에 떠내려 보냈다고 떠드는 남자 대학생들과 몇 마디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때 건너편 바위에 앉아 챙이 넓은 밀짚모자 쓴 남학생이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오후 혼자서 개울을 건너 약수 뜨러 가는데 밀짚모자 쓴 그 남학생이 할 얘기가 있다며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호감이 가던 터라 그러라고 했다. 소나기가 온 후라 건너편 산 중턱에는 무지개가 걸려 있었고 그 학생과 무지개를 바라보며 워즈워스의 「무지개」와 「초원의 빛」 시에 관한 얘기를 했다. 버스 종점까지 걸어오는 길에 때 이른 코스모스와 벌개미초 같은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 남학생은 자연경관이 좋은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며 서울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 3학년이며 부모님과 잠시 쉬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입시를 앞두고 공부가 부담스럽고 힘들다면서 진로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져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달이 유난스럽게 밝았다. 문밖 창호지에 흐릿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친구가 누가 나를 찾는다고 해서 나가보니 밀짚모자 쓴 남학생이 숙소 앞마당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편지라도 나누게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안 된다고 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라고 하며 돌려보냈다.

달빛에 비친 개울물이 은빛으로 흐르고 건너편 소나무들도 유령이듯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창창한 달빛에 내 마음이 들킨 듯 가슴이 두방망이질 했고 난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학생한테 처음 받은 프러포즈였을까, 이튿날 친구들과 아침 산책을 하다가 시내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밀짚모자 쓴 그 학생이 우리를 보더니 손 흔드는 것이었다. 나도 손 흔들며 그를 배웅했다. 버스는 먼지를 날리며 떠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 갈 때까지 나는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시를 가슴에 새기며 외우고 또 외웠다.

밀짚모자 쓴 남학생과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들길을 걸었고 달빛 쏟아지는 은빛 개울을 바라보며 초원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아련한 추억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초원의 빛> 영화 속 주인공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 좌절하다가 끝내 서로를 떠나보내며 운명 앞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렸다. 사춘기 시절에 보았던 영화를 되새김질하듯 비행기 안에서 세 시간 동안 영화에 빠져들었다. 오전리 약수터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던 사춘기 시절의 순수했던 감성이 <초원의 빛> 영화와 함께 오버랩 되어 추억처럼 아스라이 떠올랐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그대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힌 먹빛이 말라버리는 날

나 그대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힘을 찾을 지라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대 영광 찬란한 빛을 얻으 소서

―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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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진부령 폭설



살다가 보면 얘기치 못한 일들이 닥칠 때가 더러 있다. 인력으로 해선 안 될 때 가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을 나는 잘 쓴다. 그런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가끔은 삶의 지혜도 얻게 된다.

속초로 이사 온 지 이십 여 년이 된 지금 수려한 산수에 마음 빼앗겨 힐링하며 늘 행복한 생활을 해왔다.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제일 겁나는 것이 갑자기 닥치는 재해이다. 강원도에는 산불, 태풍, 폭설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한바탕 치르게 된다.

금년 겨울에는 가뭄이 오래 들어 식수 걱정을 할 정도로 눈이 오지 않았다. 한편 생활에 불편이 없었으니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겨울을 잘 넘겼다. 그런데 2021년 3월 1일 기상청 예보 보다 엄청난 눈이 영동 지방에 내렸다. 3.1절 연휴를 맞아 동해안으로 여행 왔던 관광객들이 상행 길에 눈에 갇혀 우왕좌왕하며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되었다.

그날도 손주의 첫 입학식에 참석하려고 속초 시외 터미널에서 오후 2시 30분차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오전부터 눈이 조금씩 내렸지만 점차 그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는데 눈발이 굵어지더니 폭설로 변했다. 기사님이 양양 고속도로와 미시령길이 눈 때문에 차들이 엉켜 통제 되었다고 누군가와 통화하더니 봉포를 지나 아야진 쪽으로 버스를 몰고 가는 것이었다. 기사님은 초긴장이 되어 버스를 계속 북쪽을 향해 운전을 하더니 간성 쪽으로 접어들었다. 산에 나무와 민가들이 유령처럼 눈을 뒤집어쓰기 시작하고 눈송이들은 내리자마자 형체도 없이 청남 빛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눈雪들은 빗줄기처럼 계속 창을 때리고 있었다. 희뿌연 창가를 내다보니 건봉사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불모지 눈 비탈을 버스는 거북이처럼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조여 왔지만 창밖 설경은 장관이었다. 눈보라치는 한 폭의 수묵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다가 보니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진부령’이라는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의 사계절은 같은 장소지만 다르게 보이는 것이 특색이다. 세 아이들을 차에 싣고 속초로 이사 올 때 미시령이 너무 가팔라서 차가 그 쪽으로 못 가고 진부령으로 이삿짐 차가 넘을 때 그때의 설렘이 생각났다.

드디어 진부령까지 왔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김 서린 창을 닦으며 밖을 살펴보았다. 세찬 눈보라에 눈송이들이 이리저리 날리고 산과 나무들이 눈보라에 쏠리고 전봇대들은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듯했다. 버스는 계속 서행을 하고 한 편의 동영상이 돌아가는 듯 설경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내가 일부러 폭설 쏟아지는 진부령을 올 수가 있을까? 우연히 서울 가는 길에 눈 때문에 진부령에 접어들어 평생 보지 못한 눈부신 설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진부령 수묵화 속에서 나도 주인공이 되는 거다 하며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스마트 폰으로 눈 덮인 산과 나무들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세상의 모든 고독과 그리움이 진부령에 모여 들끓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다시 창밖을 자세히 내다보니 겨울과 봄이 엎치락뒤치락 영역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가는 겨울이 오는 봄을 막는 것일까 아니면 오는 봄이 가는 겨울을 심판하자는 건가, 인간 세상 경계 지역에서 영역 싸움을 하듯 봄과 겨울이 서로 텃세 하듯 멱살 잡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무들은 떨며 서 있고 바위들은 봉분처럼 엎드린 채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령領 넘어 햇살이 떠오르면 한순간에 무너질 샅바싸움이다. 겨울과 봄 누가 더 잘 나지도 못나지도 않다. 그저 무승부인 것을 세상일 다 그런 것을, 한참 동안 눈보라 치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저만치 향로봉 쪽을 바라보았다.

그쪽인들 예외랴. 산 정상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날리고 있었다. 6.25때 향로봉을 탈환하기 위해 치열했던 향로봉 전투가 아니었던가. 승리는 했지만 수많은 아군 사상자가 생겼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8월 불 땡볕 산비탈에서 어머니를 부르다가 물을 찾다가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을까? 가슴 저린 생각을 하며 향로봉 쪽으로 고개를 뗄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산화한 영혼들이 흰 백합이 되어 허공에서 무수히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버스가 진부령 눈밭을 뚫고 버스는 원통, 용대리 쪽으로 간신히 넘어 왔다. 이쪽도 여전히 폭설이 내리고 도로 양쪽 산비탈 아래는 태초의 세계 같았다. 문득 눈 내리는 산비탈 계곡 쪽으로 내다보니 조선시대 정조 때 화가 최북의 수묵담채화 ‘풍설야귀인風雪夜歸仁’ 그림이 생각났다. 깊은 산중에 눈이 쏟아지는데 강아지가 짖으며 초가집에서 쫓아 나온다. 그리고 지팡이 짚은 노인하고 남자아이인 듯한 동자가 눈바람에 날아갈 새라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있는 풍경이다. 진부령에서 원통 쪽으로 버스가 내려오는데 눈보라 치는 계곡 깊은 산길 저만치 지팡이 짚은 허리 구부정한 노인하고 남자아이가 아슴히 걸어가는 환영에 사로잡혔다. 성격이 괴팍한 화가 최북이 그린 그림 속 주인공들의 외로움과 절절한 고독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의 눈 한쪽을 스스로 찔러서 실명이 된 그는 한국의 고흐라는 불리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버스는 눈길을 뚫고 인재 지나 홍천 쪽으로 섰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며 가고 있었다. 서울 근교 구리까지 오니 눈이 서서히 멈추고 날이 저물어서야 무사히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평소에 두 시간 이십 분 정도면 오던 서울 길이 거의 다섯 시간 반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가족 모두가 눈에 갇혀 못 오는 줄 알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TV 저녁 뉴스를 보니 양양고속도로와 미시령 쪽 도로에 연휴를 맞아 동해안 쪽으로 왔던 차들이 8시간 이상 엉켜 있어 탑승자들이 밤늦도록 고생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강원도 산길을 승객의 안전을 위해 운전해 준 기사님께 감사를 드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듯이 강원도로 이사 온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렇듯 많은 눈은 처음이었다. 진부령 설경을 보며 나름대로 봄과 겨울의 영역 싸움인가 하고 상상하고 6.25때 향로봉 전투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눈과 연관된 최북의 ‘풍설야귀인風雪夜歸仁’ 그림을 생각하며 지루한 줄 모르고 상상의 세계에 빠져서 나름대로 즐기면서 왔다. 폭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내 생애에서 정말 기억에 남는 서울 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