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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2021년 [시] 소묘 외 9편 / 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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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1,713회 작성일 21-12-14 14:41

본문

다 큰 자식 품에 안고 있는 부모처럼

미가 ㅁ어기는 심사는

내 고질병이다.


고 윤 회장님은 '땅 집고 헤엄치기'라 하셨건만

다듬고 기움은 미완의 수채화가 아닐까 싶다.


미숙아를 분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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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



태풍에 쓰러진 벼 밭

고라니 한 마리

마른자리 가려 낮잠을 잔다.


죄목도 없이 멧돼지 살해되고

솔개도 부엉이도 남하하지 않은

가을 적막강산


천적 없는 비만의 길고양이 무리

쥐 잡는 태생을 잃어버리고

허접한 가슴을 드러낸 채

포장지 더미에 코를 처박고


지게작대기만 들어도 쥐구멍 찾던

까마귀와 참새 난민의 철새들이

과태료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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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보기



평야 지대 옥토를 메우고 아파트 짓는 민족은 코리언 외에는 없는 듯하다. 샛강이 역류하는 절벽에는 2년마다 9천 원 정도 등록세 내는 벌집 별장들이 빼곡하게 늘어서서 별유천지나 다름없다. 기업도시 기반공사 때 10여 년이나 이리 구불텅 저리 구불텅 진흙탕에 자갈밭 우회도로를 돌고 돌아 출퇴근 했건만 고속도로와 KTX는 초등학교 방음벽 위로 기계체조 선수처럼 비틀어 날고 6차선 대로에 신호등이 줄지어 바리케이드를 치고 연료를 태워 먹는다.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히는 일은 스쿨존 과속방지턱과 빨강 눈을 부라리며 과태료 12만 원을 경고하는 시속 30km CCTV다. 비 오는 월요일 병목현상으로 5분에 통과하던 길을 30분 넘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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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문은

2017년 5월 문재인 취임사에서 천명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창하는 공정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강조할 뿐 아니라

‘결과의 정의’까지 고려하고,

이를 사회 각계각층에서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2015년 4월 인민일보에서

주석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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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7월 하순의 열흘간의 폭염을

후련한 쿠데타라고 푼다.

파리도 없고 모기도 없어

천행 중 다행이었다.


8월에는 그나마 바람이 불더라.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샛강이 말라비틀어지는 꼴을 보려

70년을 살았나?


더 늙기 전에

산물벼 팔아

천장형 냉난방 에어컨 달고

현관 자동문에 삼중창으로 갈아야

한 해 더 살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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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노트를 회고함



지리멸렬 가슴만 고독하다.

영혼으로 여행 날


아포들이 수 천 년에서 만 년을 생존하다가

탁구공처럼 틱톡 틱톡 국경 없는

고공비행을 즐긴다.


바이러스의 효시는 이바노브스키의 TMV인데

어원은 ‘알 수 없는 것’이란 의미이다.


땅콩처럼 이분법으로 초당 두 개씩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


내열성 바이러스는 태양 근처에서도

사멸하지 않으며 뇌세포막을 관통한다.


대학노트의 패러디를 빌리자면

무덤이나 동굴 속의 사체에서 탈출한 아포가

적합한 환경이나 숙주를 만나면

인류를 멸종시키고도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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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철 되면 전어 떼 따라 장마당 가는 망둥어처럼

메시지 가랑비에 녹초가 된다.


개인적 편견이긴 합니다만

무단 가택 침입은 폭력입니다.

사생활 침해입니다.

건망증 전 단계

개인정보 도용에 해당합니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던데

대선 총선 지방자치단체장 기초의원 공공기관장 etc.

Z당은 머시기 G당은 거시기 ···

한 명 만 골라 투표를

강요당하는 갈등을 지울 수 없다.


이명의

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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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제사는 이성계 신드롬이다.

피비린내 나는 잔인을 물타기 한

전리품이다.


태어나면서 흉터를 짜깁기하는 성형과

장기를 이어달리기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레이스가 유의미한지.


주검을 태우고 무기물을 빻아 산과 들에 뿌리거나

뼈 조각 몇 개 갈무리하여 바위 돌 하나 지두르거나

선산발치 트럼펫 소리 그치면 흩어지니

삼동이 모여 술잔 건네던

회다지 풍경도 옛날이다.


상여를 보관하던 곳집도 시큰둥하다.

길 위에서 사귄 그리운 이름들까지도

문자 메시지 콕 찍고

부의를 결재하는 마당에


無爲에 닿으면

해후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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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지나는 길에



소금발 사각거리는 남도에 가서

소치 선생을 알현하고

노을에 나부끼며 바래가는

노란 리본에 눈꼬리 훔치다가

허전함 달래려 진돗개 한 쌍

얼싸안고 돌아왔다.


선운사에 꽃무릇 군락지에서 위령제를 지내며

숙정의 부도들도 껴안아 보았다.


진우 선우 미우

진우는 수컷이고 둘은 암컷이다.

익힌 재주가 동물자원과학이라

분양해 주고 선발된 친구다.


개장수들이 입질을 할라치면

오십만 원이라고 어깃장을 깔아 놓는다.


개만도 못한 무의식들의 식민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지.


삼겹살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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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바위



선배가 선지자이고 율법이다.


문둥이 상이군인 행려병자만 스쳐도

경기하던 시절

모랑가지 산 넘고 물 건너

6년 개근하였는데

이끼 푸른 바위가 전하는

신화가 불현듯 새롭다.


등교할 때 메주 끈에 고추와 숯덩이 꿰어

무녀의 치마폭으로 가린 소도를 통과해야

살을 피해 오래 살 수 있고

하교할 때는 음문 폭포에 몸을 던져 머리를 감아야

종기와 사마귀가 떨어진다는

주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멀쩡한 신작로에 금줄을 치고

룽따가 펄럭이는 암굴을 굴비 되어 기어 넘으며

공약삼장을 외치도록

길들여졌던 시절


선연하게 살아 숨 쉬는 흔적

그 시절 여름은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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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



사화의 유전자는 진화를 거듭하는지?

꿈에 ‘Death ship’의 유령이

배후를 조여오고 있다.


대영제국 죄수들의 유배지 닮은

천년 휴식년제

국립공원 하나 펼치고 싶다.


탱자나무 울타리보다는

화성 성벽이 격에 어울릴 듯하다.


맹수들이 도사린 고도에

나를

위리안치 시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