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호2021년 [시] 無題 1 외 4편 / 이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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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살아 움직일 수 잇게 하신 이가
또 날 언제 데려가실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 떠날 때까지 시를 쓰겠다, 세상 뜬 후에도
시인으로 불려지길 소망 하던 패기는 어디로 갔나.
사람은 시간의 존재라서 서서히 낡아지고
연약해 짐을 실감한다.
그래도 순수함은 잃지 말아야지.
시가 잘 안 써진다는 변명을 길게 늘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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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1
네 곁에
마주 서 있으면
후리지아 꽃내가 난다
네 꽃내를 흠치고 싶은
이 찬란한 충동
씻은 듯 정갈한 내음
너를 닮은
꽃이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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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2
네가
움직일 적마다
초록 바람이 일렁인다
오월 보리밭에서처럼
네가
노래할 적마다
종다리 투명한 소리
높이 날며 폴포로롱
네가
숨 쉴 적마다
내뿜는 청량함은
새벽 내음
네가
웃을 적마다 감추어진
비밀을 안다
갓 피어난 제비꽃 같은
그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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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3
슬펐던 날을 울어 본 우리
그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생각지 말자
모순된 세상이 진저리나도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을 부르자
앵두나무 꽃잎이 떨어져
눈처럼 하얀 밭두렁에서
냉이, 꽃다지, 벌금자리
무릇도 캐고
노을 녘이면
다홍빛 꽃구름이
물가에 내려와 헤살짓던
우리 유년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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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의 하오
땡볕 한낮
사람들은 바다로 떠나고
텅 빈 옥상에
빨래 걷으러 나갔더니
아직도 이글거리는 햇덩이
뒷집 감나무 무성한 잎 사이로
풋감 노려보고
그 서슬에
내 화단의 봉숭아꽃들
풀 죽어 있는데
채송화만 빳빳이 치켜든 얼굴에
벌 한 마리 날아와 분칠하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데
몇 그루 토마토 빨개진 열매와
나는 숨 가쁘고 지루한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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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의 봄
집 앞 길 건너
이층집이 헐렸다
<머리가 예쁜 나라> 간판 달고 있을 땐
몰랐는데
뒤뜰이 보였다
거기 우두커니 나무 한 그루
거무튀튀한 맨몸으로
빈 뜰 지키며 혼자 서 있더니
어느 날 발그스럼 꽃망울이 보였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데
오며 가며 말 걸어 주었다
넌 꽃 피울 생각하며
추운 겨울 홀로 견디었구나
그래, 꽃 피고 나면
맛있는 열매가 달릴 거야
주문진 봄바람은 거칠고 사나워
장독 뚜껑도 날리는데
용케도 분홍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
곱다는 말 보다 더 좋은 말로
칭찬해 주고 싶은 저 살구나무
엷은 분홍 꽃잎을 온 동네 흩날리는데
집 팔고 이사 간 주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거 같다
아무래도 올봄은
사람의 봄이 아니라
마스크 안 써도 되는
너의 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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