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호2021년 [추모시] 선생님과 함께 춤을 / 정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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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춤을
은은한 작약처럼 보이지만
붉은 장미꽃 한 송이 깊이 감추고 있던 그녀
늘 정갈하게 합장하는
부처님 닮은
미륵보살이었지만
그 속에 나혜석을 품고 있던 그녀
전통과 관습을 아름답게 쓰다듬으며
장미꽃은 붉은 채로 두고
세상을 앞서 나간 생각들
두 손 모아 고요히 붙들고 붙들어
부처님 닮아간 그녀
아이고 이젠 힘들다 하시며
저 푸른 솔밭에 누운 그녀
열이레 달무리 탓인가*
우연히 그래 우연히 그리로 가서
풀 향기 남실대는 들판에
스트라우스 왈츠 걸어 놓고
순정한 머릿결 치렁치렁 풀어놓고
풀잎에 상처 나지 않게
가벼이 가벼이 스텝을 밟아
달빛 한 올 다치지 않게
그러히 그러히 바람결이듯
사뿐 사뿐 그런
그런 풀빛왈츠를 추리
치맛단에 한동안 풀 향기 출렁이게
풀 향기 흥건히 그리고 가서
온전히 하루를 다비하고 싶다
설령
뭉텅 나를 해친다 해도
나 오늘 목숨 하나 내놓을란다*
끼와 열정 앞섶에 꼭꼭 여미고
뼈대 있는 강릉 여자로 살아온 그녀
보는 눈이 많아
고매한 여류시인으로만 살아야 했던 그녀
치맛단에 풀 향기 출렁이며
이제는 목숨 하나 턱, 내놓을 필요 없이
열이레 달무리 아래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없이
겉치레 다 내려놓고
사뿐사뿐 풀빛왈츠 추시기를
먼 훗날
선생님과 함께 춤을
*이충희 선생님의 작품 「몽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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