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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2021년 [추모시] 선생님과 함께 춤을 / 정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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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741회 작성일 21-12-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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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춤을



은은한 작약처럼 보이지만

붉은 장미꽃 한 송이 깊이 감추고 있던 그녀


늘 정갈하게 합장하는

부처님 닮은

미륵보살이었지만

그 속에 나혜석을 품고 있던 그녀


전통과 관습을 아름답게 쓰다듬으며

장미꽃은 붉은 채로 두고

세상을 앞서 나간 생각들

두 손 모아 고요히 붙들고 붙들어

부처님 닮아간 그녀


아이고 이젠 힘들다 하시며

저 푸른 솔밭에 누운 그녀


열이레 달무리 탓인가*

우연히 그래 우연히 그리로 가서

풀 향기 남실대는 들판에

스트라우스 왈츠 걸어 놓고

순정한 머릿결 치렁치렁 풀어놓고

풀잎에 상처 나지 않게

가벼이 가벼이 스텝을 밟아

달빛 한 올 다치지 않게

그러히 그러히 바람결이듯

사뿐 사뿐 그런

그런 풀빛왈츠를 추리

치맛단에 한동안 풀 향기 출렁이게

풀 향기 흥건히 그리고 가서

온전히 하루를 다비하고 싶다

설령

뭉텅 나를 해친다 해도

나 오늘 목숨 하나 내놓을란다*


끼와 열정 앞섶에 꼭꼭 여미고

뼈대 있는 강릉 여자로 살아온 그녀

보는 눈이 많아

고매한 여류시인으로만 살아야 했던 그녀

치맛단에 풀 향기 출렁이며

이제는 목숨 하나 턱, 내놓을 필요 없이

열이레 달무리 아래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없이

겉치레 다 내려놓고

사뿐사뿐 풀빛왈츠 추시기를

먼 훗날

선생님과 함께 춤을


*이충희 선생님의 작품 「몽상」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