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호2021년 [추모시] 고 이충희 시인을 기리며 / 지영희
페이지 정보
본문
고 이충희 시인을 기리며
잘 깎은 연필 한 자루를 보면
그녀가 떠올려진다
연필 끝을 따라 그어지는 선 하나에
때론 삶의 진한 발자국이 따라나서고
때론 한없이 여린 감성에 봄비처럼 젖어 들던
그녀
이 땅에 남아 글 쓰는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어느 겨울날
보내 주신 새해 수첩이 아직도 흰 꿈인 채
남아 있는데
사각사각 그녀의 아름다운 선이
연필을 따라 내게로 온다
피할 수 없는 슬픔에도
예쁜 그릇에 반찬을 담아
싱그러운 봄빛을 한 줄기씩 건져 올려 드셨듯이
꽃처럼 사시기를
하시는 말씀마다
외로운 영혼을 따뜻하게 일깨워
늦은 밤 글을 쓰는 야윈 영혼에
힘 있는 선으로 내려와
그녀처럼
잘 깎은 연필처럼
살게 하기를
문득
그녀가 내 밤을 두드릴 때
오래전 새해 수첩을 꺼내
정성 들여 깎은 연필로 써야겠다
― 제가 가면 선생님,
폭풍이 몰아쳐 취소된 식사
긴 젓가락으로 서로 먹여주기 해요
- 이전글[추모시] 꽃으로 피어나셨을까 / 채재순 21.12.15
- 다음글[추모시] 보살 같은 누님 / 김종헌 2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