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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2021년 [추모시] 고 이충희 시인을 기리며 / 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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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1,748회 작성일 21-12-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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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충희 시인을 기리며



잘 깎은 연필 한 자루를 보면

그녀가 떠올려진다

연필 끝을 따라 그어지는 선 하나에

때론 삶의 진한 발자국이 따라나서고

때론 한없이 여린 감성에 봄비처럼 젖어 들던

그녀

이 땅에 남아 글 쓰는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어느 겨울날

보내 주신 새해 수첩이 아직도 흰 꿈인 채

남아 있는데

사각사각 그녀의 아름다운 선이

연필을 따라 내게로 온다


피할 수 없는 슬픔에도

예쁜 그릇에 반찬을 담아

싱그러운 봄빛을 한 줄기씩 건져 올려 드셨듯이

꽃처럼 사시기를


하시는 말씀마다

외로운 영혼을 따뜻하게 일깨워

늦은 밤 글을 쓰는 야윈 영혼에

힘 있는 선으로 내려와

그녀처럼

잘 깎은 연필처럼

살게 하기를


문득

그녀가 내 밤을 두드릴 때

오래전 새해 수첩을 꺼내

정성 들여 깎은 연필로 써야겠다


― 제가 가면 선생님,

폭풍이 몰아쳐 취소된 식사

긴 젓가락으로 서로 먹여주기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