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51호2021년 [추모시] 고 이충희 시인을 추모하며 / 이구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1,831회 작성일 21-12-15 15:33

본문

고 이충희 시인을 추모하며



2021년 음 정월 초나흗날 이침

서둘러 왕산골 유록사를 찾아드니

만 가닥의 슬픔처럼

눈발이 휘날렸지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49제 중 초제를 올리는 날

노스님의 천가 염불 소리가

맑은 목탁 소리에 맞춰 흐르고

슬픔을 감추고 엄숙히 제를 올리는

아들 한승, 딸 민정, 민재, 사위와 눈인사하고

생시인 듯 배시시 웃는 영정 앞에

선생님 좋아하시던 분홍 보라 섞인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놓고 목례를 올렸지요


선생님,

나이 들어 이 빠지듯 하나둘 내 곁을 떠나는 지인들로

주위가 매우 헐렁해졌습니다

여백이 너무 커 쓸쓸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이 왜 이리 더딘가 싶게

시린 눈물 뿌리듯 휘날리는 눈발

나부끼는 흰 눈 사이로

언뜻언뜻 옛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지연 학연 전혀 없는 바닷가에

생활 터전을 옮긴 지 수년이 됐어도

적응이 안 돼 힘들었던 어느 여름날

명주동 선생님 댁을 찾아들어 푸념을 늘어놓으니

“얘 예, 그래도 원장님 기다리신다

혜란 혜영이도 엄마 찾을 게다, 어서 집에 들어 가.”

자애로운 큰언니처럼 긴소매 셔츠를 걸쳐 주며

다독여 주셨던 손길 따뜻했습니다

지금도 그 셔츠는 농 서랍에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오랜 교단생활이 몸에 밴 습성, 호불호가 분명하여

잘잘못을 돌직구로 훈계하시니

더러는 후배들이 무섭다고도 했지요


세밑 추위가 있던

음 섣달 스므여드렛날 새벽 6시

조용히 눈 감으셨다는 비보

강릉문인회장 김경미 시인으로부터 받고는

어떻게 어떻게 그리도 황망히 떠나셨나

놀란 가슴 달랠 길 없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

지장보살 지장보살 인도로 왕생극락 하소서


2월 10일 오전 11시 강릉의료원 장례식장

듣도 보도 못했던 코로나19라는 괴물이

문상객의 발길도 더듬거리게 했습니다

QR코드를 찍고서야 통과를 했지요

친정 살붙이 같이 살갑게 대하셨던

갈뫼의 권정남 시인, 지영희 시인과 함께

문상하던 날은 조용히 그냥 조용히 기도만 올렸습니다


1938년 음 2월 18일 나시어

여든네 해 사신 나이테 참 아름답습니다

삼 남매 반듯하게 키워 출가시켰고

지아비 김원석 교수님 내조 잘 하셨고

교직에 33년 후학들을 길렀고

시인으로 작품집 다섯 권 펴내셨으니

열심히 잘 사시고말고요

훌륭하십니다


1982년 《현대문학》지에

「동해 구곡」으로 추천 완료하신 심사평을 읽어보니

초지일관 다섯 권의 시 작품들이 흐트러짐 없습니다.

“현존의 삶과 자연과의 인연을 연민의 감정으로 관조하고

순결무구한 사랑, 영혼에 대한탐구를

낭만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평했습니다


네 번째 시집 『이순의 달빛』을 받아 읽은

평창의 김남권 시인은

“자연과 생명, 인연 법을 따라 적멸하는 깨달음과

감동을 나투는 향기로운 불꽃 같은 따뜻함”이라 평했습니다


시집을 상재할 적마다 약력은 되도록 짧게 간단히 적었으나

* 강원여성문학 회장, 강릉여성문학 회장, 산까치동인 회장 등

여러 문학 단체의 수장을 지내셨으며

*관동문학상, 강원문학상, 강원여성문학상, 강릉예술인상, 허난설헌 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신 화려한 업적은 대단한 것입니다


2017년 10월에 펴내신 축시집 『靑柷』의 시인의 말에서

“정리 할 세월 이슥한 여든에 이르러 축시집을 묶는다” 하셨으며

시집의 맨 끝 순서로

「내 시에 대한 뼈아픈 헌가」에서는


“내 시, 너는 내 첫사랑이다.

(중략)

내 반쪽이다

그리움의 온갖 이름으로

둔갑하고 나서도 귀신같이 알아채는

내 시, 언제 어디서고 너를 불러내면

발밑에 당도하는 충직한 가신이다.}

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사람은 시간의 존재이기에 스러집니다만 작품은

세월이 가도 영원히 남을 겁니다

이충희 선생님,

그립고 아쉬운 게 있을지라도

부디 평화롭게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