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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2022년 [신입회원작품-시] 만추 외 2편 / 홍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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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619회 작성일 22-12-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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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푸르다 지쳐 붉어져 흩날리는

갈색 낙엽의 주검이 슬퍼져

질끈 눈을 감는다


곧 사라져 내년을 기약한다기에

그저 아쉬움 차곡 접어 가슴에 묻는다


찰나의 잔치가 끝난 오색 향연은

모두 옷을 벗어 훌훌 떠날 수 있기에

아무런 미련 두지 않는다지만


그리운 것은 그리운 채로

안타까운 가슴에 묻는 계절

가을은 처연하고 슬프다


성숙과 풍요로운 계절 속에

한 잎 한 잎 내려놓을 줄 아는

비움의 미학을 배우며


더 갖지 못해 허둥거렸던 분주한 미련

알알이 익혀 떨구어 내는 나뭇잎에

부끄러워지는 날들


더불어 호흡하는 계절 속에

주검 진 낙엽 따라

낙하할 수 있는 참된 가득함을

겸허히 닮아간다


은혜 가득 충만한 감사한 눈빛으로

차곡히 차인 부드러운 비움으로

다음 계절을 맞이해야겠다


가을이여

잠시 안녕을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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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나는 들었네

깊은 세월의 한숨 뒤

참을 수 없는 애잔함 토하는

그대의 핏빛 붉은 뜨거운 고백


나는 보았네

보아도 그리운 것 눈감아도 철렁이는 그리움

가슴에 담고 차 곡이 세월 켭켭 쌓아 올려

더는 참을 수 없는 인고의 시간 지나

무너지듯 토함의 빛


나는 알았네

멀리 마등령 천불동 설악의 깊은 골짜기

마른 계곡 뾰족한 돌 하나

작은 보라 제비꽃 한 송이 품고 보듬어

안으로 지켜 내는 사랑의 고통


나는 느끼네

그대의 사랑은 가장 깨끗한 마음

심연의 투명한 영혼으로 피어올라

끝없이 인내하고 품어가다

참을 수 없는 깊고 뜨거운 숨결

한 번의 울림으로 노래함을


나는 닮고 싶네

시시각각 흘러가는 구름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에도 오롯이

응달진 계곡 깊은 개울가 바닥

구부려진 비목 굵은 가지 하나 지켜 내는

그 마음 영원으로 품어 내어

수줍게 고백으로 토하듯 표현하는

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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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1



산에 올라 산을 보니

산은 없고 바람이 지나는 골짜기

낙엽이 뒹구는 계곡


얼마나 비우고 비워 내야!

저 산 천년 머문 바위

티끌 돌처럼 온전히 순수한 돌이 되리


무심하게 유유히 세월을 낚아채어 흘러

한 소절 맑은 물로 투영되어

정화하는 시간의 침묵 견디어 내고


나를 내리고

흐르는 것은 그저 흐르는 대로


바람을 딛고 이겨 내는 소나무

절개의 기상 가득 품은

초록의 생명의 숲에서

나무 한 조각될 한 움큼 눈에 담겨

나를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