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호2022년 [신입회원작품-시] 만추 외 2편 / 홍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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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푸르다 지쳐 붉어져 흩날리는
갈색 낙엽의 주검이 슬퍼져
질끈 눈을 감는다
곧 사라져 내년을 기약한다기에
그저 아쉬움 차곡 접어 가슴에 묻는다
찰나의 잔치가 끝난 오색 향연은
모두 옷을 벗어 훌훌 떠날 수 있기에
아무런 미련 두지 않는다지만
그리운 것은 그리운 채로
안타까운 가슴에 묻는 계절
가을은 처연하고 슬프다
성숙과 풍요로운 계절 속에
한 잎 한 잎 내려놓을 줄 아는
비움의 미학을 배우며
더 갖지 못해 허둥거렸던 분주한 미련
알알이 익혀 떨구어 내는 나뭇잎에
부끄러워지는 날들
더불어 호흡하는 계절 속에
주검 진 낙엽 따라
낙하할 수 있는 참된 가득함을
겸허히 닮아간다
은혜 가득 충만한 감사한 눈빛으로
차곡히 차인 부드러운 비움으로
다음 계절을 맞이해야겠다
가을이여
잠시 안녕을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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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나는 들었네
깊은 세월의 한숨 뒤
참을 수 없는 애잔함 토하는
그대의 핏빛 붉은 뜨거운 고백
나는 보았네
보아도 그리운 것 눈감아도 철렁이는 그리움
가슴에 담고 차 곡이 세월 켭켭 쌓아 올려
더는 참을 수 없는 인고의 시간 지나
무너지듯 토함의 빛
나는 알았네
멀리 마등령 천불동 설악의 깊은 골짜기
마른 계곡 뾰족한 돌 하나
작은 보라 제비꽃 한 송이 품고 보듬어
안으로 지켜 내는 사랑의 고통
나는 느끼네
그대의 사랑은 가장 깨끗한 마음
심연의 투명한 영혼으로 피어올라
끝없이 인내하고 품어가다
참을 수 없는 깊고 뜨거운 숨결
한 번의 울림으로 노래함을
나는 닮고 싶네
시시각각 흘러가는 구름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에도 오롯이
응달진 계곡 깊은 개울가 바닥
구부려진 비목 굵은 가지 하나 지켜 내는
그 마음 영원으로 품어 내어
수줍게 고백으로 토하듯 표현하는
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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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1
산에 올라 산을 보니
산은 없고 바람이 지나는 골짜기
낙엽이 뒹구는 계곡
얼마나 비우고 비워 내야!
저 산 천년 머문 바위
티끌 돌처럼 온전히 순수한 돌이 되리
무심하게 유유히 세월을 낚아채어 흘러
한 소절 맑은 물로 투영되어
정화하는 시간의 침묵 견디어 내고
나를 내리고
흐르는 것은 그저 흐르는 대로
바람을 딛고 이겨 내는 소나무
절개의 기상 가득 품은
초록의 생명의 숲에서
나무 한 조각될 한 움큼 눈에 담겨
나를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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