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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2022년 [시] 바늘꽃 외 6편 / 조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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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499회 작성일 22-12-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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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끝에 첫 시집을 엮고 동분서주 발로 뛰는 남편의 외조를 새삼 감사하게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정 행복한 날들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며, 흔들리는 날 시는 견고한 버팀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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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꽃



한 살 어린 내 동생

동백꽃 점순이

오동통 뽀얀 피부

앞짱구 뒤짱구

욕심이 들어앉아 있었다


애기땡비라며

동생을 향한

엄마의 탄식


천방지축

드넓은 들판을 뛰어놀다

이름 모를 가시에 찔려

움칠거리다

꿈에서 깨어났다네


낡고 해진

구멍 난 삶을 꿰매고 있던

울엄마

고집불통 막내딸

이쁜 꽃으로 피라고

바늘로

콕콕 찌르고 계셨다네


아릿하게

다시 피어나는

바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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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의 싸움



처서 지나

갈무리한 텃밭에

무 배추를 심었다


여리디여린 모종

뿌리 내리기 좋은 줄 간격

숨 고르기로 맞추고

애정 한소끔 뿌리는 중


통통 튀는 별난 닭

닭장 훌쩍 넘어

풋풋한 풋내

모이라 찾아와서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고


벼락같은 남편의 목청

가림막 없는

밭 언저리에서

철딱서니 없는 닭이라

혼을 내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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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드는 바다



낮은

사막의 능선을 걸었다

유혹으로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자상함


누군가 노닐다 간

올망졸망 백사장 볼우물

뜨거운 시간과 별빛이 고여

여름이 익었다


아직은 이르다고

푸른 물결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지만

선들바람이 유들유들


하늘이 웃으며

쓸데없는 고집이라며

조금씩

바다로 들어

깊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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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내가 홀로 사는 집

성역이라 고집부리며

쉽사리 보이지 않을 듯


가끔은 맑게 개인

하늘빛이 고와서

어쩌다 조잘거리는

참새가 귀여워

잠시 열어 두다

스스로 잠기는 문


때로는 고적함이 좋아

창문 너머 세상

아름다운 날도

빗장이 나를 가두고


이유 없이

아무것도 아닌 날

바람 불면

스치듯 아파


여태껏

내가 나를 모르듯

마음이 지은 집

그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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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아 보니

좋은 사람 있더라


커피 한 잔 마시지 않고

밥 한 그릇 나누지 않아도


청량한 가을빛으로

온 마음 채우는 향기


이유 없이

그냥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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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빈 말이라도 좋다

습관이 인사가 되어

서로 나누다 보면


어색함이 몽돌로 닳아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가슴 데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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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고 서 있는 당신에게



그대는

오늘의 영웅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거칠어

웃음이 사라져도

배려와 따뜻함이 깃든

그 마음 알기에


이 순간이 지나면

평온이 돌아와

깊은 속정이 더욱더

마음에 쌓인다는 걸

지나온 세월이

토닥거리며 속삭입니다


이 저녁 행복하라고

격려의 위로조차 아끼며

편안한 꿈속에서

사랑의 눈길로 만나보는


당신은

최고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