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호2022년 [시] 바늘꽃 외 6편 / 조외순
페이지 정보
본문
긴 시간 끝에 첫 시집을 엮고 동분서주 발로 뛰는 남편의 외조를 새삼 감사하게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정 행복한 날들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며, 흔들리는 날 시는 견고한 버팀목이 되었다.
------------------------
바늘꽃
한 살 어린 내 동생
동백꽃 점순이
오동통 뽀얀 피부
앞짱구 뒤짱구
욕심이 들어앉아 있었다
애기땡비라며
동생을 향한
엄마의 탄식
천방지축
드넓은 들판을 뛰어놀다
이름 모를 가시에 찔려
움칠거리다
꿈에서 깨어났다네
낡고 해진
구멍 난 삶을 꿰매고 있던
울엄마
고집불통 막내딸
이쁜 꽃으로 피라고
바늘로
콕콕 찌르고 계셨다네
아릿하게
다시 피어나는
바늘꽃
------------------------
닭과의 싸움
처서 지나
갈무리한 텃밭에
무 배추를 심었다
여리디여린 모종
뿌리 내리기 좋은 줄 간격
숨 고르기로 맞추고
애정 한소끔 뿌리는 중
통통 튀는 별난 닭
닭장 훌쩍 넘어
풋풋한 풋내
모이라 찾아와서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고
벼락같은 남편의 목청
가림막 없는
밭 언저리에서
철딱서니 없는 닭이라
혼을 내고 섰다
------------------------
가을이 드는 바다
낮은
사막의 능선을 걸었다
유혹으로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자상함
누군가 노닐다 간
올망졸망 백사장 볼우물
뜨거운 시간과 별빛이 고여
여름이 익었다
아직은 이르다고
푸른 물결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지만
선들바람이 유들유들
하늘이 웃으며
쓸데없는 고집이라며
조금씩
바다로 들어
깊어 가고 있다
------------------------
마음
내가 홀로 사는 집
성역이라 고집부리며
쉽사리 보이지 않을 듯
가끔은 맑게 개인
하늘빛이 고와서
어쩌다 조잘거리는
참새가 귀여워
잠시 열어 두다
스스로 잠기는 문
때로는 고적함이 좋아
창문 너머 세상
아름다운 날도
빗장이 나를 가두고
이유 없이
아무것도 아닌 날
바람 불면
스치듯 아파
여태껏
내가 나를 모르듯
마음이 지은 집
그 누구도 모른다
------------------------
그냥
살아 보니
좋은 사람 있더라
커피 한 잔 마시지 않고
밥 한 그릇 나누지 않아도
청량한 가을빛으로
온 마음 채우는 향기
이유 없이
그냥 좋더라
------------------------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빈 말이라도 좋다
습관이 인사가 되어
서로 나누다 보면
어색함이 몽돌로 닳아
가까이
좀 더 가까이
가슴 데워지는
------------------------
역경을 딛고 서 있는 당신에게
그대는
오늘의 영웅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거칠어
웃음이 사라져도
배려와 따뜻함이 깃든
그 마음 알기에
이 순간이 지나면
평온이 돌아와
깊은 속정이 더욱더
마음에 쌓인다는 걸
지나온 세월이
토닥거리며 속삭입니다
이 저녁 행복하라고
격려의 위로조차 아끼며
편안한 꿈속에서
사랑의 눈길로 만나보는
당신은
최고의 사람입니다
- 이전글[시] 나무와 까치집 외 9편 / 양양덕 22.12.26
- 다음글[시] 금단의 벽 외 10편 / 이진여 2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