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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시-최숙자]어성전 슬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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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424회 작성일 05-03-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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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고 서너 달
가을 꽃을 보겠다고
달려간 어성전리

꽃잎 벌어 환하던 강둑길
너와 나를 잇던 다리는 다 끊어지고
강물도 제 갈길 몰라 서성이는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네

발 딛는 곳마다 뿌리라는 뿌리는
하늘 밑둥까지 다 뽑힌 채
쓰러져 누운 골짜기
내 몰랐구나
너 이렇게 몸져 앓고 있는 줄

상처가 너무 커 새들도 비껴 날았을
떼 울음 내달리는
지척에 너를 안중에도 없이
뭐가 그리도 괴로운 일이었는지

젖은 밤거리를 배회하고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아
늦은 소주에 쓰리게 쓰리게 취하던
시장기 같은 외로움은
얼마나 배부른 사치였던가

미안하다
너의 숨소리에 닿을 수 있다면
심장에 뜨거운 피를 갈아 넣고
시린 무릎 함께 절룩거려도
울음 그치지 못하는 들녘에 서야겠다

푸른 별들이 내려와
화안히 풀꽃 등 내어 걸고
세상의 한 귀퉁이를 밝힐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