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52호2022년 [시] 화채봉 외 9편 / 장승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431회 작성일 22-12-26 20:16

본문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고 간 지구촌에 

산불이, 지진이, 홍수가 빈발합니다.

기후변화가 환경재앙을 몰고 오는데 

아직도 우리는 무덤덤합니다.

이에 대한 시를 써 보고자 시도했습니다.


네덜란드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를 보고 

아일랜드 모허 절벽에 서보고 싶다는

두 개의 버킷리스트를 이룬 한 해라 

모처럼 삶에 활기찬 양념이 뿌려졌습니다.

아직 써지지 않은 시겨울의 남미를 기다립니다.


------------------------


화채봉



화채봉



이성선, 최명길 두 시인과

오르던 초가을 설악

당당하게 앞서가던 젊은이들

낙엽 덮고 잠 청하던 오솔길 지나

화채봉 어스름에 천막 세웠지


물소리로 내리는 달빛 속에서

작은 잔 하나 가득

별빛 가려 담아 건배를 하고

아스라한 등성이들 모다 앉혀 놓고

어깨동무로 노랠 불렀지


세월 지나도 닳지 않는

그 밤의 풍경 그 소리 그 표정

그 눈동자 영원히 늙지 않아

가슴 지갑 고이 넣어둔 불변의 토큰

이제야 밝히는 내 비밀의 NFT


* NFT : 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가상 자산으로, 고유한 인식 값이 있어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복제할 수 없고 소유권도 명확히 할 수 있음)


------------------------


초록 숨구멍



문고리 잡으면

손가락 쩍쩍 달라붙던

내 어릴 적 추위는 어디 갔을까

키 큰 야자수 해변이 빛나는

먼 남쪽 섬으로 날아가 숨었을까

따뜻한 겨울 고드름처럼

북극 빙하 녹아내려

수만 년 푸른 기억들 쏟아지네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하면

바다의 섬들 찰랑찰랑 가라앉고

아직 남아 있는 섬들은

바다 위 떠 있는 초록 숨구멍

석탄 광산의 카나리아같이*

모두에게 울부짖는 경고 사이렌

섬들이 숨 막히면

다 죽는 거야


* 카나리아가 일산화탄소 등 공기 중의 독성물질을 흡입하면 죽는 것을 발견하고 무색무취의 일산화탄소로부터 광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새장을 탄광 속에 걸어두게 된 데서 유래하여 ‘석탄 광산의 카나리아’(Canary in the coal mine)는 ‘닥쳐올 위험을 미리 경고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투발루



태풍에 뽑히는 코코넛 나무들

파도에 깎여 나가는 해안선

뜨거워진 바닷물에 산호초 시들고

물고기와 농작물이 죽어 간다네


공장이 하나도 없는 나라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푸른 기억의 섬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가라앉는 섬나라를 아시는지


2001년 국토 포기를 선언한 나라

1만여 국민들 이웃 나라 이민을 호소했지만

거절당해 지구 최초 환경난민 되었다네

바다 한가운데 종잇장처럼 떠

가장 높은 해발 3.78m 활주로가 잠기면

흔적 없이 사라질 운명


빙하가 녹아내릴수록

땅이 사라지는 이 나라 목사님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목이 쉬도록 외치고 다닌다네

온실가스 배출은 대량 학살이라고

공동의 집 지구에서

투발루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


굴 꽃



‘조새’로 껍데기 모서리 쫄 때마다

유백색 통통한 굴이 나왔다

입 안 가득 차오르는 향기


2007년 12월 7일 아침 7시

유조선에서 쏟아진 원유 1만 2,547㎘

태안 해안 가득 출렁이던 검은 파도


절망 모퉁이 돌아 14년 지났다

푸르러진 바다에 굴 수확 한창이다

감칠맛 꽂히는 젓가락마다

칭칭 감겨 오르는 시퍼런 희망


123만 명 모여들어 기름을 퍼 담고

수건으로 새카만 바위를 닦아 냈단다

회복에 걸린다던 수십 년

전문가들 예상 뒤엎고 바다는

달려왔던 사람들 손으로

서둘러 기억을 돌려주고 있다


하늘은 보고 있었구나

정성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검은 파도가 흰 꽃으로 피다니

이건 꽃이다 바다의 꽃이다


------------------------


인공눈 올림픽



스키 초보로 열정 넘치던 시절

야간 연습에서 생긴 자신감으로

아침 일찍 내리달리다 넘어지던 기억

꽁꽁 얼어버린 슬로프의 역습


100% 인공눈 첫 작품이라지

훨훨 날던 선수들 줄줄이 넘어지는

베이징동계올림픽 스키 슬로프

어찌할까 자연눈 내리지 않으니

더 이상 춥지 않은 겨울을 어이하리


평창올림픽 치렀던 가리왕산 슬로프에

식물 복원이 더디다고 하는데

따뜻한 겨울 올림픽을 위하여

지구의 산등성이들 중병을 앓을지


앞으론 못할 수도 있을 거야

피눈물 4년 연습 참가해 넘어지던

내노라하는 선수들만큼이나

비명을 지르네 인공눈 올림픽


------------------------


순록의 태풍 Reindeer Cyclone



북극권에 모여 사는 순록들

새끼와 암컷들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리며 뱅뱅 도는 태풍의 눈 만들었네


순록 떼를 겁먹게 한 포식자는

탄저균 예방접종 하러 온 수의사

빨라진 지구온난화로

툰드라 동토의 얼음이 녹고

숨어 있던 탄저병 바이러스가 나와 퍼져

순록들 감염시켜 죽게 만들자

올 수밖에 없었던 천사가 악마로 비춰진 셈


생각지도 못했던 악순환

주사 맞히러 몰아넣어야 하는 사람들과

영문도 모르고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순록들

소란을 괴롭게 바라보게 된 숲의 나무들

추운 북극에서 대대로 살아온

슬픈 생명들의 딱한 춤사위라네


------------------------


종이컵 커피 한 잔



점심 먹고 총총

받아들고 들어가는

테이크아웃 종이컵 커피


매일 한 잔씩 즐기던 시간이

세포를 죽이는 신경독성물질 되고

혈관 따라 몸 전체로

뇌 속까지 흘러 다니고 있다니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돌고 돌아 내 몸속 축적되어

칼날들 되었다


편리함에 올라타 놀다 보니

종이컵 하나에서 20개씩 나왔다는

5mm 미만 플라스틱 조각들

연간 7,300여 개 미세플라스틱으로 쌓여

숭고한 정신의 우리 존재가

독한 쓰레기 저장소 되었다


------------------------


대왕오징어



길이 3m 무게 80kg의 오징어가

항구에서 산 채로 잡혀 올라오고

‘용궁의 사자’ 산갈치가 나타나자

일본 열도가 들끓어 올랐다

심해어를 보는 얼굴들 흙빛 되었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후지산이 이상해지고 있다

참새들 사라지고 곤충들 늘어나고

오래된 동굴 속 얼음이 녹았는데

주변 여기저기서 뜨거운 화산수가 솟구친다

1707년 마지막 분화되었던 산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예고된 재앙이라 말하는 사람들 얼굴엔

근심이 빵효모처럼 부풀고 있다


긴 팔 휘저으며

깊은 바다에서 올라온 대왕오징어

후지산 구름 위를 헤엄치며

뭐라고 자꾸 외치는데

주파수 안 맞는 우리 귀만 먹통이다


------------------------


새똥광을 아시나요?



친환경 농사를 지어온 호수에

떼죽음 물고기가 떠올랐다

오랜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설치된

태양광 패널에 뒤덮인 새똥을

씻어내느라 사용한 세척제 때문


철새도래지 새만금 해창만 삽교호

전국 곳곳 뒤덮은 검은 패널

수상태양광이 드넓은 새똥광판 되었다네

가창오리 큰고니 큰기러기 도요새 노랑부리저어새

늘 하던 대로 날아들어 놀다 쉬다 간

새들에게 무슨 죄 있으랴

새똥 씻어 내고 5분 만에 다시

재빨리 복원되었다는 새똥광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얼마나 될까


새 머리보다 못한 머리의 인간들이

돈에 미쳐 저지른 일로

새들은 하늘로 뜨지 못하고

물고기는 물속을 달리지 못하고

영문 모른 채 세상을 뜨는구나

눈 뜨고 이 악문 재앙을 맞는구나


------------------------


산양아 비키니 입어봐



5백 년 만이라던가 2022년 여름

유럽 대륙이 폭염에 들끓었네

여기저기 산불 타오르고

강과 호수의 바닥이 드러나

감춰졌던 역사 유물들 드러났다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처법은

그저 비키니 비슷한 최소한의 옷을 입고

뜨거워진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


서식지의 온도가 올라

희귀 보호종인 산양이 사라질지 모른다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멋쩍은 제안

북극으로 이사 갈 수도 없는

태백산맥의 가엾은 산양들아

너희들도 비키니를 입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