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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수필] 금강산 화암사 / 이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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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49회 작성일 23-12-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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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은 화암사

사십여 년이 더 지난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즐거워

모자란 작품 하나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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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화암사



군복을 입은 장정들이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반나절을 넘기고 되돌아 나오는 군인들의 어깨에 들려 있는 것은 관이었다.

사십 년이 더 지난 겨울, 화암사 노스님이 열반에 드셨는데 다비식은커녕 운구조차 못하고 있었다. 눈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스님의 주검이 4km 아랫마을 군부대의 도움을 받아 열흘만에야 7번 국도로 나와 장례가 진행되었다.

요사채도 따로 없이 오래된 절간 한 채가 전부였던 금강산 화암사의 예전 모습은 모두 스러졌다. 절 입구 넓은 다리 아래 계곡을 건너며 디뎠던 두 개의 돌이 이마를 맞대고 살아있어 볼 때마다 반갑다. 영욕의 세월을 묵묵히 함께해 온 화암사 징검돌이다. 번듯한 다리가 건설되자 잊힌 작은 돌다리, 애틋하고 각별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의 풍광이 빼어난 것은 변함없다.

절 마당에서 굽어보는 봄 산, 연두의 물결 사이 산벚이며 산수유가 피어나고 안개가 어리는 것을 바라보면 모르는 사이 천상으로 옮겨온 것 같은 신비로움을 느낀다.

금강산 첫 봉이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 봉우리라고도 불리는 신선봉 아래 화암사가 있다. 능선이며 바위의 수려함은 설명할 수식어가 모자란다. 곤궁한 스님들을 위해 쌀을 내주었다는 수바위의 전설은 바위 앞에 기록되어 있으니 살펴볼 일이다. 무한 천공에 걸친 바위에 서면 대청봉과 울산바위, 속초와 고성까지,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신선대의 비경은 또 무엇에 비기랴…….


화암사 아래 군부대에 몸담았던 남편 덕분에 우리의 소풍은 자주 화암사로 향했다. 여름이면 출입 금지 팻말이 무색하게 계곡을 독차지하고 도시락을 꺼내먹으며 찰바당거렸다.

마흔이 넘은 큰아들이 어렸을 때 사람을 잘 따라서 스님께서 자주 놀아주셨다. 배불리 먹여서 방글거리는 녀석을 무릎에 올려놓고 알아들을 수 없는 쫑알거림에도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곤 하셨다. 스님의 가사 장삼에다 큰일을 본 유일한 아기라며 호방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오래전, 절간 마당 끝에 찻집을 앉혀 소문이 자자해서 친구와 함께 비오는 날 이곳을 찾았었다.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 벌떡 일어나서 코를 휘두르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웅크린 수바위의 위용에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기와 끝 추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발아래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꿈꾸듯 바라보는 호사를 누려야 했기에. 차를 받쳐 들고 오는 신자인 듯 보이는 보살이 실내화도 없이 허연 맨발을 드러낸 것에 마음이 상했다. 친구와 나는 찻집과의 절연을 선언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뒷담화도 못될 허물인데 젊음이란 때론 포용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