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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수필] 나일강 그리고 사막 외 1편 / 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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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23-12-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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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막의 일출과 나일강 일몰을 봤다.

경이롭고 눈부신 대자연 앞에 홀렸다.

여행은 내 삶을 충전해 주고 겸허하게 해주는 배터리다.

분단 조국, 실향민들 가슴에 속초역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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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그리고 사막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여행은 넓은 세상과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만나는 일이다. 또한 일상에 갇혀 있던 시간들과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자신과의 만남을 위해 떠나는 일이다. 문학은 물론 많은 예술가들한테 여행은 보약과도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되며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삶을 재충전해 주는 배터리가 되기도 한다.

교과서에만 배운 지식을 가지고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한 곳인 이집트를 향해 인천 공항을 떠났다. 1월 중순 추운 날씨였지만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그리 춥지 않았다. 기원전 문화가 찬란했던 이집트를 대표하는 도시 카이로. 시가지가 낙후되어 있었고 거리마다 휴지가 뒹굴고 검은 옷을 입은 노숙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카이로에서 남쪽 아스완 행 밤 8시 기차를 탔다. 좁은 기차 안은 객실 한 칸이 2층으로 되어 있었고 청결하지 못했다. 15시간 추운 객실에서 잠을 뒤척이다가 이튿날 오전 10시쯤 아스완에 도착했다.

먼저 화강암 군락지인 아스완 채석장에 갔다. 그곳에는 길이 45미터 되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땅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고 반쯤은 돌무더기에 파묻혀 있었다. 화강암은 카르나크 대신전을 비롯하여 기자지구 피라미드 등 여러 신전을 만드는 데 사용했으며, 4500년 전 화강암 석재들은 나일강 뗏목으로 운반되었다고 한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곳 룩소르에 있는 크루즈에서 3일 동안 머물렀다. 세찬 나일강 물살에 몸을 뉜 갈대들이 크루즈가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나일강을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크루즈는 수천 년 전의 역사를 보여 주려고 현대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을 싣고 유유히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3층에는 수영장 등 다양하고 깨끗한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창을 열면 손닿을 듯한 거리에 맑고 푸른 나일강이 출렁이고 있어 기분이 상쾌했다.

람세스 2세가 아내 네페르타리와 남쪽의 수단 반군을 무찌르려고 할 때 밀림 속 나무들이 뿜어내는 서기瑞氣와 나일강의 물결에서 기적을 시험하지 않았던가. 나일강 하구 쪽 범람한 물소리가 원시의 소리이듯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구약 성서 출애굽에 기록된 얘기로 나일강에서 발견된 갈대로 만든 바구니에 담겨 있던 애기가 훗날 모세가 아니었던가. 그는 훗날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또한 나일강 가에 자란 파피루스는 이집트인들이 발명한 최초의 종이의 원료다. 우리나라에 한지가 있다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두루마리 파피루스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파라오를 비롯하여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와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어서 왕가의 계곡 같은 무덤 속 벽화를 보면 파피루스 위에 그려진 신들의 그림이나 글씨를 쉽게 볼 수 있다.

둘째 날 여행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크루즈 3층에 올라갔더니 스산한 강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일강 선상에서 바라보는 나일강 일몰은 장관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 짚불을 태우고 있는 듯 신령스러웠다. 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낮에 다녀온 람세스 2세의 좌상이 있던 아부심벨을 생각하며 기원전 피라미드를 세운 쿠푸 왕과 세티 1세 그리고 람세스 2세의 업적을 떠올렸다. 특히 람세스 2세는 카투사 전투로 북쪽 끝 히타이트 제국까지 쳐들어가 영토를 확장하며 이집트를 일으켜 세운 영웅이지 않은가. 문득 18세에 타계한 투탕카멘의 근엄한 황금 마스크와 정열적인 눈빛이 노을 속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나일강의 붉은 노을이 마치 현세보다 내세를 더 소중히 여긴 파라오들의 꿈과 열정의 불덩이처럼 허공에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삼 일째 되던 날은 다음 여행지인 카르나크 신전을 가기 위해 새벽 4시 30분 버스에 올랐다. 1월이라 룩소르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쌀쌀했다. 나일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발전되었던 이집트가 오늘날에 와서는 발달이 늦다. 문화와 유적지에 관한 시민들의 관심과 의식 수준도 낮은 것 같았다.

카르나크 신전까지 버스로 4시간 남짓 가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마치 내 전생 어디쯤에 온 듯 막막한 리비아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캄캄한 밤하늘에 박혀 있던 수많은 별들이 사막에 빛나는 보석 다이아몬드를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았다. 잠깐 사이 은하수보다 더 많은 거대한 별들이 환호하듯 강줄기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더니 사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고 난 후 잠깐 사이 여명을 뚫고 사막 저 끝에서 올라오는 해가 사막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막의 일출은 속초 앞바다 일출 못지않게 장엄했다. 순간 사막에서 떠오르는 뜨거운 햇덩이를 내 詩 속으로 끌어들여 왔다.

카르나크 사원까지 거의 왔을 무렵, 광활한 모래 위에 이글거리는 태양은 묘기를 부리듯 신전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주황빛 사과처럼 끼어 있었다. 한낮쯤에는 카르나크 신전 꼭대기에 걸쳐 있던 태양은 람세스와 모세로 상징되었으며 한때 뜨겁기도 하고 냉엄했던 그들의 우정과 배반이 오벨리스크 꼭대기 붉은 깃발이 되어 펄럭이고 있었다.

카르나크 대신전을 짓기 위해 세티 1세에서부터 람세스 2세 모세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부들이 아스완의 거대한 화강암 바윗덩이를 나일강 뗏목으로 운반해 오지 않았던가. 신을 모시기 위한 그들의 격식과 의례가 웅성거림으로 귀에 들리는 듯했다. 신전 안에는 이집트 왕들과 신들의 이야기가 벽화로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기원전 3000년 전에 어떻게 저런 어마어마한 신전을 지었을까, 태양신을 상징하는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파라오들의 업적을 대변하듯 신전 입구에 줄로 서 있었다. 매의 神 호루스를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의 머리가 神으로 형상화되어 근엄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 다시 룩소르의 크루즈로 돌아와서 짐을 챙겼다.

사 일째 되던 날에는 크루즈를 떠나 홍해 바다가 있는 휴양지 후르가다를 가기 위해 끝없이 동사하라 사막(일명 리비아 사막)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갔다. 한낮의 사막은 막막하게 펼쳐진 흰 눈밭 같았다.

저만치 어디쯤 어린 왕자가 여우를 데리고 머플러를 펄럭이며 뛰쳐나와 나에게 귓속말들을 들려 줄 것만 같았다. 별을 사랑하던 앙뜨 생텍쥐페리가 별 속을 야간 비행하다가 리비아 사막인 이곳 어디쯤에 불시착을 했다고 한다. 생텍쥐페리는 불 땡볕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이슬을 받아먹고 오렌지 반쪽을 혀끝으로 핥으며 극한 상황을 견뎌 냈다. 태양과 뜨거운 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기도 하고 살기 위해 혹독한 고생을 치렀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사막에서 만난 여우 이야기를 소설 『인간의 대지』에 상세히 기록하였고, 『어린왕자』에서도 여우가 등장한다. 생텍쥐페리가 불시착했던 장소가 어디쯤일까. 그때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를 생각하며 사막을 살펴보는 순간 오스탕스 블루의 시, 「사막」 이 생각이 났다.



그 사막에서 / 그는 너무나 외로워 / 때로는 뒷걸음질로 / 걸었다. //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 보려고



그의 시를 생각하며 황량한 리비아 사막을 바라보니 처절한 고독, 그 세찬 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 듯하고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이곳에서 들끓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고독은 생의 시작이고 생의 완성처럼 느껴졌다. 리비아 사막 북쪽으로 갈수록 이정표도 없고 바위로 된 산맥이 끝이 없었다. 나무도 풀도 사람은 더구나 없는 하얀 모래와 회오리치는 바람뿐이어서 흡사 우리나라 백두대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막은 별들의 집이고 바람의 집이다. 사막 끝에는 순교한 바람소리이듯 서걱이는 소리가 통곡처럼 들려왔고 버스는 운명처럼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희뿌연 바람의 섬에 갇혀서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내 곁을 떠난 살붙이들이 이역만리에서 나를 반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체취가 그리워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닐까. 사막은 그 넓은 가슴으로 나를 품어 주었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모래 둔덕이 마치 내 육신이 빠져나온 봉분이듯 느껴졌고, 사막 여기저기에 내 영혼들이 널려있는 것만 같다.

그 웅장한 사막의 집을 떠날 때 나는 별들에게 피리를 불어 주고 싶었다.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소설 「람세스」 5권을 십년 전에 읽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정독을 했다. 이집트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느낌을 책으로 다시 읽으니 생생한 현실이듯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집트 왕 파라오들이 영생을 위해 설계하고 지은 수수께끼 같은 피라미드와 카이로 박물관의 미라들. 그리고 왕가의 계곡 같은 엄청난 유적지 얘기는 다음에 글로 쓰려고 내 안의 탑처럼 소중히 쌓아 놓았다.

매티멀린가 “당신이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유일한 사람은 어제의 당신”이라고 했듯이 여행을 통해서 지난날의 나를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동사하라 사막, 즉 리비아 사막의 아침 일출과 나일강에서 바라본 낙조 즉 일몰에 관해서 썼다. 그 장엄한 일출과 일몰, 뜨겁던 불길이 지금도 내 안에 용솟음친다. ‘나일강 그리고 사막’ 여행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낙타가 사막을 떠난 자리에 쩔렁이는 방울 소리, 그 오랜 여운을 잊을 수가 없듯이 일출과 일몰의 그 뜨겁고도 붉은 낙관이 내 가슴에 지문처럼 오래도록 찍혀 있다.



석류가 객혈 하듯 해가 떠오른다

붉은 물결로 출렁이는 모래들

불가마 되어 자글자글 제 몸을 끓이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중천을 떠돌던 해가 저물녘이면

오벨리스크 두 개 돌기둥 사이에

둥근 사과처럼 끼어 있다가

나일강 하구에 붉은 낙관을 찍어 놓고

갈대 밭머리에 투신한다

까무룩 출렁이는 울음들

사막의 태양 람세스와 모세

그 뜨겁던 우정과 배반이

카르나크 신전 꼭대기에서

붉은 깃발로 펄럭인다.


― 「사막의 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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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엔 속초역이 없다



늦가을 아침 커피잔을 앞에 두고 조수미가 부른 번역 곡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노래를 연속으로 듣고 있다.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왔다. 문득 유년 시절 기찻길 따라 학교에 다니던 기억이 났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 흔들어 주고 기적을 울리며 다가오던 기차소리에 막연한 설렘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중앙선을 타고 오르내리며 사계절 풍광 속에 스치며 지나가는 역들이 나에게 다양한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중 기억나는 역은 소백산 중턱에 있던 죽령역이다. 나선형 철길을 숨차게 오르던 기적 소리와 매캐하던 석탄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종착역인 청량리역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에 많은 인파가 물결처럼 몰려왔다가 몰려가서 마치 내가 둥둥 떠 있는 듯했었다. 그렇게 해서 만나는 기찻길과 기차역들은 내게 꿈을 키워 주고 영혼을 성장하게 해 준 것 같다.

세월이 흐른 후 중년을 앞둔 어느 날 속초로 이사를 왔다. 속초에서 알게 된 몇 분들이 철길이 있던 자리와 속초역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속초역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해 북부선은 원산과 부산을 잇는 철도로 1929년 일제 강점기에 원산과 통천 간에 처음 개통했으며, 일본 사람들이 한반도 인력이나 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했다고 한다. 또한 속초역은 1937년 고성과 양양 구간이 건설될 때 설치되었으며 남과 북을 운행하던 철길은 1950년 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세월이 벌써 70여 년이 흘렀다.

전쟁 이전에는 속초역을 통해서 남과 북 사람들이 오고 가며 삶을 나누며 서로 교류했을 것이다. 실향민들이 사흘 후면 북쪽 고향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떠나온 슬픈 종착역인 속초역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속초역을 찾던 어느 날 속초가 고향이신 분이 속초역이 있던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역은 속초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었으며 옛 주소지인 동명동 450-195번지임을 알아냈다. 역이 있던 자리를 찾아갔더니 흰색 상가 2층 건물이 들어섰으며 도로가 새로 생기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탓에 주변을 살펴봐도 철길 흔적은 없었다.

한때 삼팔 이북이었던 속초가 휴전 이후에는 남한에 소속된 수복 도시가 되었다. 피난을 위해 잠시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은 속초역에서 듣던 기적소리가 마지막 소리가 아니었던가. 이별의 아픔과 동시에 속초역 마저 사라져 버린 지금,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더욱 막막해진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속초역이 있던 자리에 가서 한참을 서성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속초시립박물관에서 세모꼴 지붕인 불란서식 조립식 건물 속초역을 발견했다. 순간 반가워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합실에 들어가 손님들이 앉아 있던 나무 의자에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살붙이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과 북을 오고 가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을 애환의 역이 이젠 그리움의 역이 되어 촌노처럼 수줍은 듯 서 있었다.

‘원산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 <중략> / 함께 나눈 시간들은 / 밀물처럼 멀어지고 / 이제는 밤이 되어도 / 당신은 오지 못하리 / 당신은 오지 못하리 / <중략> / 기차는 멀리 떠나고 / 가슴속에 이 아픔을 / 당신은 역에 홀로 남았네 / 남긴 채 앉아만 있네’ 한때는 속초와 원산을 오고가던 그리움의 열차가 여덟 시에 떠나고 여덟 시에 도착하기도 했으리라. 조수미의 번역 곡을 패러디하며 의자에 앉아서 혼자 불러 보았다. 그런 속초역을 보자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타 보지도 않은 동해 북부선이 그리움의 철길이 되어 내 가슴에 덜컹대고 있음을 알았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보니 양양 남대천을 가로지르던 동해 북부선 원산행 콘크리트로 된 교각이 생각났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교각을 사진으로 찍곤 했다. 속초역 못지않게 교각은 동해 북부선이 지나가던 철길의 흔적이다. 주문진 지나고 강릉 지나 덜컹대며 통일을 염원하며 달리던 기차 소리가 들리는 듯, 남대천을 가로지르며 우뚝 서 있던 교각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교각이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다. 도시 미관상 교각을 없애 버린 건 아닐까. 참혹했던 전쟁의 상흔과 아픈 역사를 품고 있던 속초역과 양양 남대천 교각이 없어지다니 안타까웠다.

몇 년 전 경상도 크기만 한 마카오를 다녀온 적이 있다. 상상력의 도시이며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다. 마카오에는 17세기에 지어진 포르투갈의 유적지인 성 바울 대성당이 있다. 1835년 화제로 성당의 몸체가 소실이 되고 계단과 지하실만 남은 부채꼴 앞면이 세나도 광장 언덕에 우뚝 서 있다. 앞면만 남은 바로크 양식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대성당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들이 마카오를 찾는다. 그런 성 바울 대성당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보존해야 할 동족상잔의 비극과 이산離散의 상징인 속초역과 남대천 교각이 사라졌다. 수복 지구 속초를 지키며 가꾸어 갈 후손들에게 지역의 아픈 역사를 어떻게 정립시켜 주고 일깨워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속초역 흔적을 찾다가 시립박물관에서 속초역을 만난 후 「속초엔 속초역이 없다」라는 詩를 썼다. 그리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하니 속초엔 속초역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 속초역이 있다. 이산 일 세대 분들이 한 분씩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 실향의 종착역인 속초역에서 듣던 원산행 기적 소리와 고향 단천과 신포에 대한 그리움이 그들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픈 마음 때문에 「속초엔 속초역이 있다」라는 詩를 다시 썼다. 속초역과 양양 남대천 교각이 지금껏 남이 있었으면 외국인은 물론 관광객들한테 분단 조국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속초역이 있던 자리에 옛 속초역을 복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편 2021년 9월 전태극 사진작가님이 ‘동해 북부선의 흔적’이라는 주제로 속초에서 사진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양양에서 고성까지, 더러는 망가지거나 부서진 흔적만 남은 동해 북부선 교각 사진 7개를 전시했다. 그리고 2023년 9월에는 속초시 승격 60주년을 기념하여 <설악문화 예술포럼> 이상국 회장께서 ‘역사ㆍ문화 콘서트 <동해 북부선>’이라는 뜻있는 주제로 속초문화예술회관 소강당에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사라진 아픈 역사의 흔적을 전태극 사진작가와 이상국 시인이 동해 북부선을 재조명한 뜻 있는 행사였다.

2027년이면 춘천에서 속초까지 KTX 즉 동서고속 철도가 완공이 되고 2020년 정부에서 추진했던 동해 북부선이 남 강릉역을 시작으로 고성군 제진역까지 개통될 예정이다. 같은 해에 동서고속 철도와 동해 북부선이 완공이 되면 속초는 지형이 바뀌고 강원 북부지역 관광도시이며 교통중심 거점 도시가 된다. 동서고속 철도 개통을 앞두고 요즘 속초는 묵은 옷을 벗고 새 옷 갈아입기에 한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지역이 발전하고 주민들의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족이 흩어지고 사흘 후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던 이산의 상징인 옛 속초역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옛 주소지인 속초시 동명동 450-195번지 꽃다방 건너편, 속초역이 있던 자리에서 남과 북의 혈육들이 재회하며 손잡고 태극기 휘날릴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