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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시] 호미 외 9편 /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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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3-12-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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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이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곧 시(詩)였다고...

내 영혼 곳곳에 스며든 고단했던 어머니들의 말들


하나씩 세상 밖으로 소환하는 것

내가 글을 쓰는 시작이며 끝인 것이다


한 마디씩 소환되는 말속에

어머니의 눈물로 다져온 세월

다시 추억하며 손을 잡고 걷는 것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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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한평생 언문 깨우치지 못해

하늘 부끄럽다

고개 숙이며 사셨던 어머니


새끼들 세상에 패이고 돌아오면

까막눈 당신 탓이라고

양철 지붕처럼 달아오른 자책

뇌신* 한봉 털어 넣고

냉수 한 컵으로 불 삭이셨다


꼿꼿하던 허리 밭고랑에 파묻힌 호미 되어

고구마 옥수수 배추밭에

귀 기울이며 살아온 세월


비바람 과하면 몸으로 막아 내고

배추가 무르면 햇살을 불렀다


흙의 소리 듣던 야윈 몸

뿌리내린 목숨들에겐 은혜였다


“남의 눈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엔 피눈물 난다”

어린 손 잡으며 자장가처럼 들려주던

그 손 힘 없이 놓으시며

가장 낮은 곳에서 글 깨우치고

흙으로 떠나셨다.


* 뇌신 : 중추 신경계용 약(해열, 진통, 소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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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에 갇힌 기억



앵두 빛 열꽃 피어난 어린 동생 하늘로 떠났다

여린 넋 하늘의 별 되라

모든 숨결은 빌고 빌었다


해송海松 손 맞잡고 바닷바람 막아 내는 모래땅

작은 봉분 위 시루를 덮으면

해당화는 노을과 함께 물들고

허기진 짐승들로부터 모래 무덤 지키던 시루

마르고 가파른 울음 울었다


청춘이 떼로 세상을 떠나고

고통이 벚꽃 되어 거리에 뒹굴어

기댈 곳 없이 패인 사람들이 있어도

꿈쩍 않는 이웃들과 살고 있는 세상

별은 더 이상 지상의 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구멍 난 가슴으로도 어린 무덤 지키던 시루

봉숭아 꽃물 들이며 노을처럼 익어 가던 사람들

밑줄 친 그때 기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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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깎이



멀리 있다 잘라 내고

가깝다고 다듬는다


바짝 잘라 내고

다듬은 손톱 끝


세상과 마주치자

화들짝


아프고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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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란젓



소금과 고춧가루에 절여진 너는

한때 어미의 푸른 꿈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곳으로

보란 듯이 손잡고 함께 가

태양보다 더 붉은 웃음으로 덩실덩실

익어갈 사람들을 만나야 했었다


진주처럼 영근 마음속 다짐

들뜸과 설렘이 함께한 시간

절임이 고통 되어 붉은 꽃으로 남겨졌다


명란젓 한 조각 입에 넣어 삼키려니

새끼를 세상 밖으로 보내지 못한

어미의 아픔과 회한이

온몸 짭조름한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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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성취나 우등 없이

뒷모습을 보지 못한 불식 속에 살아왔다


아직도 서책을 펼쳐 활자를 채굴하고

세상살이에 방향을 찾으려 함은

취학도 하기 전 머리 버짐 이끼처럼 박혀 있던 시절


막내 저놈은 뒤통수에 공부 머리가 있는데

취기 가득한 아버지의 무심한 격려

그때의 들뜸 확인하고자


보이지 않는 내 뒷모습 비밀 찾고자 했지만

그건 바람처럼 지나가는 취중의 위로였고

내 이력 먹물로 성공할 삶은 아니었다

바람에 날려간 돈을 찾는 눈빛 같은 것


단 한 번도 마주쳐 보지 않은 뒤통수

그 비밀을 버리고

이젠 누군가에 뒤통수를 보며

비밀 찾으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을 찾아


나는 나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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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닭이다



민증 까 !

그 말 깊숙한 곳엔 오로지 공인된 생년만 인정

다른 모든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부정의 언사


전쟁이 끝나고 폐허 된 곳곳에

아이들은 씨앗처럼 뿌려지고

골목마다 허기진 소리로 개들은 짖었다


야윈 아이들 소리 잦아들고

개들의 발걸음에 놀라지 않을 눈빛이 되자

출생신고를 한다


뿌리내리지 못한 씨앗을 위해 밭을 일구지 않는다는

시절의 불문율

1959년 돼지로 잉크물이 적셔졌다


비록 퇴화되어 멀리 날 순 없지만

하늘 높이 날고 싶은 닭의 꿈 사라지고

우리 안에서 꿀꿀대는 안위로 분주했다


민증 까!

그 소리에 아래를 존중하고

위를 존경하게 된 마음 밭은 아니었을까

불쾌와 성냄 낮춤과 화해

젊은 날 시비하듯 껴안고 살았다


어쭙잖은 날개로 세상을 날으려다

세상에 곤두박질 모습을 그려 낸 선견이 만든 고의였다

우리 안의 삶 고개 숙인 복종의 나날이었다


이제 생이 한가롭고 아플 때

조금 헐렁한 옷차림 속에 약한 무릎 데리고

울안을 나와 날갯짓 하고 싶다


나는 돼지가 아닌 닭이다

굿바이 돈 플라이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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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바다가 잠이 들면 아버진 파도 되어 밤이 세도록 으르렁거리고

포말로 잠긴 집 어머니는 물돛 되어 떠다니는 집 지키고

야윈 어머니 허리춤 나는 따개비 되어 잠이 들었다


곡식이 익어 가고 글 읽는 소리가 밤알처럼 영글어도

빈 가슴 노을처럼 깊다

손(孫) 없던 훈장 어른

바다 마을 풍랑으로 과수 된 젊은 아낙 씨받이로 맞이하여

귀한 아들 얻었다네

말(馬) 등에 그 손 태워 읍내로 행차하면

하당고을은 존엄과 풍요 속에 잠이 들고


논 몇 마지기 보상으로 어린 눈빛 몰래

앙금의 눈물 훔치며 친모는 떠나고

공자 왈 맹자 왈 세상의 눈뜸보다

천륜의 부재가 무서웠다


말굽 소리 별과 함께 잠든 밤 삼강오륜 줄행랑에 담고

해무에 잠긴 바다마을 자객 되어 스며들면

그 내력 안다고 부둥켜안을 어미는 세상이 두려웠다


동냥하듯 친모를 찾는 세월 청춘이 지나고

방앗간 집 데릴사위 품계로 육 남매 낳아 터 잡은 곳

강릉시 강문동 200번지


따개비 같은 불화 느슨해지고 포말이 걷힌 세월 맞이하자

파도 같은 으르렁거림 당신의 한 맺힌 사모임을 알았습니다

야윈 허리춤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이제야 그 마음을 배웁니다


떠나신 지 이십여 년 단 한 번도 소식 없는 그곳에서

할머니랑 마주 앉아 빡짝장 호박잎 싸서 드시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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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눈물



EBS 세계테마기행 몽골 낙타의 눈물을 보았다

바람이 벌판을 스치고 사막의 모래는

밤하늘의 별처럼 곳곳에 뿌려진다


그 옛날 전쟁을 치르던 중 장군이나 용맹한 병사가 죽으면

임시 매장을 하고 어미 낙타가 보는 앞에서

새끼를 죽여 무덤 위에 던진다


참혹한 순간을 목도한 어미는 훗날

모든 것이 사라진 벌판을 걷다 슬피 우는 곳

새끼가 눈앞에서 죽어간 그 자리를 정확히 찾아낸다


서두름 게으름 없이 터벅터벅 사막을 걷는

성지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

한걸음 한 걸음마다 뜨거운 태양은 창끝

온몸을 파고든다


눈에 바다를 담고 사는 낙타

유목민들은 낙타의 눈에서 바다가 보인다고 믿는다

어린 영혼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꾼다


절규와 함께 어미 가슴에 묻힌 어린 죽음

마두금 소리되어 벌판에 퍼지고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닌 나날

먼저 간 어린것을 가슴에 품고 사는

어미의 아픔이 더욱 커다란 눈물 되어

세상 곳곳에 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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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해무에 잠긴 바다

등대는 점자 더듬는 손길 되어 수척


허기진 개들은 골목마다 마른 혀를 내밀고

아비를 기다린 아이들은 마른 잎처럼 잠들었다


어마이는 야윈 숨비 소리로

파도에 옷고름 다 헤쳐 놓은 해변에서

먼 바다 아바이를 그들의 품으로 불렀다


지지할 곳 없던 모래밭 터전

판자에 박힌 못처럼 세월은 녹슬고

새끼들에 닻 내린 삶 따개비 된다


그렇게 뿌리내린 삶 모두 떠나고

시린 생의 이야기 벽화로 남아

낯선 길손에게 절름거리던 아픔

여름 그림자 되어 안내한다


어깨 기대고 흔들리던 자네와 난

함께 묻히고 함께 돌아가야만 했다


끝내 해무에 갇혀 돌아오지 못한 넋

청호동 골목길 블록담에 핀 나팔꽃

절규와 한숨이 서린 바다에

진혼의 나팔을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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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말



아바이, 어마이

순수 불순, 찬성하다 반대하다, 거칠다 부드럽다

비굴함 당당함, 죽음 삶, 약함 강함, 현지인 외지인

두려움 용기, 반가움 불쾌함, 기대하다 실망하다

힘들다 편하다, 혼란스러움 평화로움, 즐거움 우울함

아프다 건강하다, 놀다 일하다, 화가 나다 평온하다

전쟁 일상


살아서 비겁한 밥 먹지 않으려

아바이는 검푸른 파도에 얼굴을 씻고

어마이는 오징어 먹물에

가난한 얼굴을 숨겼다


반쪽 된 땅덩어리

반쪽에 닻을 내려

반쪽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나날

기침 소리 함께 절뚝거렸던 세월의 지팡이


할복장 블록담에 새겨진 반대말

아바이 어마이

평생 가슴속에 숨긴 서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