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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시] 수선화 외 9편 / 강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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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44회 작성일 23-12-15 10:33

본문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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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봄볕 따스한 날 장바구니 들고

골목길 돌아서는데

귀녀 할머니

“새댁 장에 가나”

수선화 옆에 앉아 나를 반긴다


과일 두 개 생선 두 마리

부엌문 앞 몰래 두고 오면

수선화 고마워 방긋 웃는다


할머니 요양원 가시던 날

수선화 노란 얼굴로 울고 있다


이듬해 쌀쌀한 봄날

귀녀 할머니

하늘나라 가셨다고

수선화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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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미소가 예쁜 봄날

봉고차 꽃나무 가득 실고

철물점 마당에 서 있다


탐스럽게 핀 수국 눈부시다

난초꽃도 제비 입처럼 피었고


그중 녹색 잎 주렁주렁 달린 거 골라

아저씨 이거 얼마인가요

꽃이 피면 행운이 온다 하던데


커피 한 잔 값 주고 데려왔다


물을 주며 웃는 얼굴 보고픈데

말을 건네 보고

꽃봉오리 보인다

가슴이 벅차 흥분하며

얼마 만에 만났지


삼년을 기다렸다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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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눈



막대 사탕 물고

다섯 살 꼬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왜 이모 쳐다보니

이모가 아닌데요

그럼 아줌마

아줌마 아니고요

할머니가 되려고 해요


수정 같은 눈 아니고

매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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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



살기 위해 피난길 나섰다

생명줄은 작은 배

언제 돌아올 기약 없이

흥남부두를 떠나

북위 38도 지나

남쪽으로 넘어올 때

미군 헬기가 삐라를 뿌렸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은 밀가루 포대


다들 처음 보는 거라 의심스러운 눈치

이걸 가지고 떡장물 해서 먹으면

참 맛이 좋습메

누군가 말했다

이북 사람들에겐 처음 먹어 본 수제비


피난길 목숨은 험난했어도

허기진 배를 채운

밀가루 삐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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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7반



시시하게 시를 썼다.

등단이라고 시인님이라 부른다

6학년 7반에 ‘갈뫼’ 입학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고

가슴에 박힌 가시도 빼내어

썼는데


뜸 들다만 밥처럼

윤기도 구수함도

없는 설익은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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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보석



너는 어디서 왔을까

태양 빛 따라왔지


서해 거친 해풍 타고

온 거야


깊은 바닷속에 숨어 있다

왔을 거야


누구의 혀에 귀한 몸

녹여 줄까


명품 보석이라 비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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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아버지가 사 준 고무신

누가 훔쳐 갈까

모래밭에 묻어 놓고


신나게 물놀이하다

태양이 구름 속에 들어가면

영금정 바위에 배 깔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다


해 넘어 갈 때 엄마가 부르면

넓은 모래밭 다섯 자매들

모두 나서도 끝내

찾지 못한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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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저녁노을 붉게 물들이더니

설악산 단풍 내려오는 중


따가운 햇살

사과나무 포도나무

그늘에 놀다 가더니

빨강 초록 보석 달아 주고


밤이슬 조용히 내려앉더니

방울방울 물감 만들어

나팔꽃 백일홍

화단에 수채화

그려 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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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시장 골목길 콩, 조, 여러 가지 곡식

한 홉씩 한 대박씩 담아

좌판대 놓고 졸고 있는 할머니


지붕 위에 비둘기 들

때를 기다린다

만찬의 기회가 시작이다

그때


할머니 화장실 다녀오더니

손뼉 치며 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우짜노 마이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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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장성한 아들 둘이나 있으니

어여쁜 규수들 지나가면

며느리 삼고 싶어

슬쩍 훔쳐보며


소싯적 나에게도

많은 늑대들이

훔쳐보았겠지


백합처럼 활짝 핀 꽃

날마다 훔쳐더니

이제는 호박꽃이라

쳐다보지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