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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시] 당신 귀도 내어 줘 외 9편 / 장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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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57회 작성일 23-12-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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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 있을 때 많이 다니자고 

한 달 남미를 돌아보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거쳐 

베트남 응우엔주와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돌아왔습니다.

곧 인도네시아에도 가야하고 

남프랑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견문이 생각으로 발효되고 

마침내 시로 피어날 날을 기대하며 

아직도 설레는 가슴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다섯 번째 시집 『인간 멸종』을 내는 마음이 

그리 즐겁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의 재앙이 끊이지 뉴스가 되고 있으니까요 

내년 1월에 돌아보려던 북아프리카가 

지진과 대홍수로 고통 속에 있고

세상이 전쟁, 마약, 경제위기, 고독사 등 갈등으로 넘칩니다.

삶이 고통이듯 쏘는 일도 고통입니다.

그러나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앞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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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귀도 내어 줘



퍼얼 펄 눈이 온다는 말

봄 눈 내릴 때 어울리지

흠뻑 젖은 눈송이 꽃송이 덮어

탄성 같은 비명이 가득한데도

하늘 가득 춤추며 내려오는

그 의기양양함에 어울리지


사륵 사르륵이라는 말

봄비 내릴 때 어울리지

목마른 대지 막힌 숨길 트여

촉촉이 젖어 드는 나무줄기들

뿌리들 동그란 입 모양이 떠오르지

뽀얗게 드리운 아늑함에 어울리지


펑펑 철철 이런 말 대신

안단테로 흐르는 자연의 언어

하늘과 땅이 조율하여 지어내는

교향곡이 연주되는 날

늦은 눈 이른 비 특별 공연이잖아

혼자 듣기 아까워

당신 귀도 내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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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 나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끝없이 변하면서도 제자리를 지키기 때문


욕심이 많은 벌로

뿌리가 뽑혀 거꾸로 자라게 되었다는

몸속에 저수지를 가진 나무

오랜 가뭄에도 수 천 년을 살아온

아낌없이 나눠 주는 덩치 큰 성자


기후 변화로 죽어 가고 있다네

벼락을 맞아 가지가 부러지고

이상 고온과 가뭄으로 목말라

잇달아 지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처럼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 우리들 잘못으로

지축을 울리며 넘어지고 있다네


바오밥이 사라진 지구는

샘이 말라 버린 돌덩이 사막


*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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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프다



주변에 아픈 사람 많다

멀쩡하던 분들이 아까운 나이에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 들려오는 저녁

샙초롬한 눈을 뜬 가로등은

눈시울 붉은빛 뿌린다


어디서건 실시간으로 날아드는

죽은 사람들 소식

전쟁과 재난은 늘 있어왔다지만

마음 병든 이가 애매한 이들 죽였다는 소식에

어스름 골목집들도 일찍 불을 끈다


지구가 아프다

숲속 나무도 기어오르는 벌레도 아프다

끼룩끼룩 줄지어 이동하는 기러기도

아가들 먹이 구하러 나가는 등목어도

사람들처럼 몸과 맘이 아프다


깜깜한 하늘에

깜빡깜빡 별들이 눈 뜬다

그냥 죽을 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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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피안



경이롭다고 했다

인류는 지난 200백 년간

100배의 물질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무자비하게 자연을 무찔러

스스로를 100배나 파괴했다고


지구 역사 45억 년 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는데

모두 자연 현상이 원인이었다면

2050년으로 예상되는

제6차 생물 대멸종은

인간이 자초한 최초의 것이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발전이 퇴보이고

성장이 몰락이며

생산이 파괴인 역설

인간 멸종이 목전에 와 있는데

현란한 게임에 빠져

우린 더 이상 자연의 책을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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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구하기



얼음 조각배에 탄

배고픈 북극곰 한 마리

낯선 별 착륙한 어린왕자처럼

마냥 서서 빙산 보고 있다


빙하 위 바다표범 본 지도 오래

얼음 녹은 해안에서

죽은 물고기 찾아다니다

고립되었다


바다코끼리 턱수염바다물범 고리무늬물범

북극고래 흰고래 일각돌고래

빙하가 필요한 친구들 모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처지


이산화탄소 1킬로그램당

2톤씩 얼음이 녹는다는데

북극 빙하 소멸로

자주 찾아오는 폭염과 폭우


화석연료 기대어

당장의 안락을 구할 것인가

온실가스 배출 줄여

북극곰을 구할 것인가


따뜻해진 바다에서 일어난

열대성 폭풍이

기후 변화의 망령으로 되돌아와

사람 잡는 재난으로 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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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음식이 버려진다

그 많은 고기 생선 빵 김치

배를 곯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텐데

유통기한 지났다는 이유 하나로


지구 한 켠에선

배고픈 아이들

쓰레기 더미 뒤진다

동물들도 눈치 보며 먹을 걸 찾는다

굶주리는 숫자가 지구의 절반이다


대형 마트일수록 대량으로 버린다

계속 소비해야 남는 장사니까

곡물 가격을 유지해야 하니까

10세 미만의 아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고 있는데도


아까운 걸 모르는 아이들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어른들과

기후 변화 흉작으로 책임 돌리는 학자들

뒤룩뒤룩한 욕망의 열차 타고

목숨 역 정차 신호 무시하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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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우주



우주여행

해보지 못한 나에게

지구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 햇살 받아

나쁜 공기 걸러내며

편한 숨 쉬게 하는 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끝없이 변화하는 당신 때문에

난 맘 놓고 하늘을 본다


껍질 쓰다듬으면

나이테가 먼저 만져지는 이여

뿌리 곁 생명들 품고

계절을 서둘러 건너는 이여

땅속으로도 하늘로도 오르내리는

무한대의 자유


가로변 은행나무

동네 어귀 느티나무

봄 화살나무 가을 붉나무

나에겐 모두 태초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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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발자국



아침에 눈 뜨면

수돗물 틀어 세수하고

냉장고 열어 반찬 꺼내 밥 먹고

TV 보고 에어컨 틀고

자동차 타고 밖에 나간다


틀고 열고 보고 타고

나의 일상이 탄소 발자국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배출의 흔적

나의 하루는 발자국 모여 쌓은 언덕

나의 일생은 발자취 모여 만든 산이다


가스를 탄소량으로 바꿔 무게로 환산하고

이산화탄소 흡수하는 나무 숫자로 표시하는데

주 1회 승용차 이용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하면

연간 약 470kg 이산화탄소 발생량 줄일 수 있고

71그루 나무 심는 효과와 같다고 한다


운동을 위해 만보기 사용하듯

탄소 발자국 계산기 이용하여

대략 통계를 내 볼 수도 있고

탄소 발자국도 중독성 있어

쓰던 것 버리고 신상품으로 바꾸면

더 빨리 발자국이 쌓여만 간다


고층빌딩일수록 새 상품일수록

생산지가 멀수록 더 많아지는 발자국

내 몸 위해 다이어트 하듯

생활 습관 돌아보고 생각을 바꾸면

쌓여 가는 발자국 줄일 수 있을까


오래된 옷 고쳐 입고

배달 줄이고 걸어 나가 직접 사고

실개천 실천 모여 큰 강물 되듯

태산으로 높아지는 내 발자국 언덕

조금씩 천천히 허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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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강



길을 걷다 가끔은

나루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지

구부러진 강기슭 물소리로

모진강이나 신연강처럼 지금은 없어진

아득한 나루터 이름들 부르며

강바닥 깨끗한 모래를

만져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삶을 쪼개거나 쥐어짜면

시가 나오는 줄 생각한 적 있었어

바람 닿으면 이파리 뒤집으며

흐느끼듯 떨리던 키 큰 미루나무

그렇게 떨릴 수 있으면 된다고

강가에 오래도록 서 있는 그림자 안고

물비늘 반짝이며 찰랑일 수 있다면

그게 시가 아닐까 생각이 바뀌었지


내 안의 강엔 녹색 숲 자라고

하얀 조약돌과 은빛 물고기들 있으면 돼

가끔 물총새 뛰어들며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외쳐주면 돼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라고*


* 나바호족 인디언의 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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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에서



울타리 위 나팔꽃 웃는다

아침 햇살 물고 보라색 입술 벌리는 지금

포근하던 그대 미소 그립다

광막한 우주의 한 귀퉁이

찰나에 매달린 빗소리

우리 은하에서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 어느 별에서도 생각날까


먼지보다 작은 지구 반대쪽에서

폭우로 제방 무너져 도시가 잠기고

열돔에 갇힌 마을 불붙어 사라진다

아우성의 생생한 장면이

빛의 속도로 끝없이 움직이는 동안

신화를 만들어 낸 옛사람들 표정을 생각한다


어디로 갈까 모든 기억들

바로 앞을 알지 못하며

아주 오래된 것들만 보도록 지어진 운명

첼로 선율 빗소리와 미소의 기억 붙들고

지구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