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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시] 비아 돌로로사 외 9편 / 이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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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58회 작성일 23-12-20 14:40

본문

유기체의 내 육신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나는 아름답게 가고 싶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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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돌로로사



오, 청년 예수시여

아무 죄 없이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무지한 자들로부터 받은

수치와 수모

모진 아픔과 고통 중에도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침묵하며

열네 고비 길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난 중에 돌아가신

저질러 진 그 모든 죄악을

용서하셨나이다.


*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 예루살렘 중심부에 있는 길, 라틴어 (슬픔의 길, 예수 십자가 수난의 길).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골고다 언덕 사형장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걸어가신 수난의 열네 고비에 의미를 담아 그림 또는 조각으로 그 위치가 각각 표시되어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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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관과 홍포*

― 비아 돌로로사 제2지점



성자 예수시여

나는 손가락의 가시도

못 견디게 아팠는데


가시관을 쓰고도

그 쓰라린 채찍의 고통을 어찌 견디셨나요

홍포를 입혀 희롱하는 로마 병사

얼굴에 침 뱉는 병사

온갖 수모를 어찌 견뎠나요

무거운 나무 십자가 메고 나오는

예수 앞에서

“자, 이 사람이요.”

빌라도가 말했을 때

군중들은 더욱 소리 지르며 흥분했다


십자가를 메고


조롱하는 군중 사이로

사형장 골고다를 향해 옮기는 발걸음마다

흘러내리는 피와 땀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주 보혈이었네.


*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칭하는 예수를 조롱하기 위하여 가시나무로 관(冠)을 만들어 씌우고 당시 최고급 옷감의 붉은 옷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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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 비아 돌로로사 제4지점



나를 낳아 주신 성모여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신

나의 어머니


슬퍼하지 말아요

참으로 하나님께

은혜받은 여인 중에

큰 복을 받으신 성모여


가시관을 쓰고 흘러내리는 붉은 피

채찍으로 맞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범벅이 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들의 처참한 모습 보고

슬퍼하지 않을 어미

세상에 있을까


그러나 예수여

당신은 그리스도 구주救主이기에

다 참으리다


몸부림쳐 통곡하고 싶은 슬픔도

강하게 참으리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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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대신 져 준 시몬

― 비아 돌로로사 제5지점


구레네 사람 시몬이여

고맙소


두 아들의 아버지인

그대가 시골에서 올라와 우연히 지나다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메고

골고다 언덕까지 갔다는

영광스러운 얘기 성서聖書에 써 있소 (막 15:21)


비록 로마 병사들에게

강제로 끌려 행한 일일지라도

영원히 기록된 좋은 일이요


피 흘리며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고

또 쓰러지던

예수의 십자가를 잠시나마

대신 져 준 구레네 사람

시몬이여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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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수건

― 비아 돌로로사 제6지점


성 베로니카여

그대는 참 용감하였느니

극악무도한 로마 병정의

삼엄한 감시에도 아랑곳 않았다


피땀으로 얼룩진

예수의 처참한 모습 외면치 않고

머릿수건을 풀어

예수의 얼굴을 닦아 드렸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하늘의 감동인가

오, 거룩하신

예수의 초상이 나타났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 정교회가 이 지점에

기념교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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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피 울며 따라오는 여자들

― 비아 돌로로사 제8지점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혀

병에 시달리던

막달라 마리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 주신

예수를 어찌 잊겠는가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따라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지켜본

산 증인이다


살로메

세베대의 아내 갈리리 여인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의 제자로 드리고

자신도 끝까지 예수를 섬기며

열정으로 헌신한 여인

예수의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여인


이 여인들의 슬피 우는 모습을 보며

예수께서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하신 곳

예수는 두 번씩이나 쓰러지시면서도

부활을 보게 될 여인들을 위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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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소리와 비명

― 비아 돌로로사 제11지점



오 주여

돌부리에 발이 부딪쳐도

소스라치게 아픈데

얼마나 아프셨을까


십자가에 손발 못 박을 때

비명보다 더 크게

망치 소리 쾅 쾅 울리는 듯합니다


못 박힌 손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

성혈聖血

온 세상의 모든 죄

사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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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놓은 곳

― 비아 돌로로사 제13지점



부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정치와 종교의 최종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의 정회원이며

율법에 능통하고 신망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같은 공회원인 니고데모에게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 당했다는

소식에 깊이 애통하며 고민했다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 달린 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용기 내어 빌라도에게

예수의 장례를 자청

향품으로 장례를 준비했다


예수의 시신이 내려진 곳에

성묘聖墓교회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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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묘에 예수님의 시신을

― 비아 돌로로사 제14지점



요셉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


자신이 죽으면 들어갈

돌무덤에 예수님을 안장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았다


앞으로 닥칠 고난을

자청하며 헌신한

아리마대 요셉


산헤드린 공회와 제사장들에게

예수의 시신을 도둑질한 혐의를 받고

공회원 자격 박탈과

사십 년의 감옥살이 형을 받았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의 시신이

안보인 까닭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승천하셨기에 무덤에 안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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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 대한 명상



밟혀도 쓰러지지 않는

인내


엎드렸다가도 혼자 일어서는

의지


죽은 척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서는

순종


저지른 죄 하나 없는

잡초라 부르는 풀은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