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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2023년 [특집 詩] 속초시 승경 60주년 기념 특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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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악문우회
댓글 0건 조회 54회 작성일 23-12-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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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포 아저씨


- 김춘만



중앙동 도장포 아저씨

손재주 좋았다


북쪽 가족 이름은

가슴에 새겨 넣고

오가는 사람들 이름은

도장 목에 넣어 주었다


가슴 속 이름은 사리가 되고

도장 속 이름은 나비가 되었다


잘 마른 도장 목으로

꼿꼿했던 실향 일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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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것과 잊혀지지 않는 것들


- 이구재



무남독녀 외딸로

귀하게 자라던 넓은 뜰

뒤란 장독대 맨드라미 봉숭아꽃 따던

일곱 살 적 지금도 어른거리고

스위치만 올리면 따뜻하고 훈훈했던 온돌방

설빔을 장만하시던 어마이

빨간 꽃 그림이 있는 대자로

비단을 마름질하시던

어마이가 어른거려도


그립다 투정한 적 없지비

울고 싶도록 화나도

안 그런 척 꾹 참고 산 속초살이가 70년


그렇게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데

어마이도 아바이도 다

돌아가시고


서방도 없이 이럭저럭 살았으나

어찌 살아 냈나 보니

단천 앞 바다 빛깔이, 냄새가

속초 앞 바다와 한가지라


여기가 내 고향이지비

떠돌지 않고 박혀 산 속초살이가 70년

이제는 아득하여

단천은 잊혀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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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항


- 채재순



도루묵, 양미리 철이면

동명항 아낙들이

대꼬챙이 꿰인 겨울 바다 숯불에 올리고

아낙의 남정네 배 안에선

동해가 펄떡이네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저도 한자리 끼어 보겠다고

입맛 다시며

앉은 사람들 사이로 끼어드는 눈송이, 눈송이

바람 타고 굽는 냄새 퍼져 가니

더 많은 몰려드는 함박눈


비린내투성인 사내들이

불콰하게 술 추렴을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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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일기 56

- 청호동 봉숭아


- 지영희



봉선화야 하면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청호동 봉숭아는 언 손으로

돌아가야 할 끊어진 길을 꼭 잡고 있습니다


먼 구름을 뚫고 내리는 뱃고동 소리를

두고 온 가족들의 아침 발자국 소리를

곧 돌아갈 설렘에 한 숟가락씩 담아 심은 화분이

붉은 울타리가 되어

잊을 만하면 울컥

고향 하늘가에 피우곤 하지만


청호동 봉숭아

언 손으로

햇살을 마당 한 가득 붉게 채워

든든한 뿌리로

언제고 돌아갈 길을 조금씩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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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식해


- 김영섭



진화는 드러내지 않는 느림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다.


대수일 리 없는 아바이 마을

마천루가 갯배를 감추고

울릉 독도까지 KTX가 추월하며 달린다 해도

모천의 담금질 인자를 기억하는 연어처럼

붉은 아가미와 은빛 지느러미가

천상천을 돌아 대청을 넘어

백담에 이르리.


속초 사람들이 멜팅퐅이라 하더라도

울산바위가 유람선이 되어

세계 일주를 떠나게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청호동 연인의 사구에는

정렬의 마그마가 솟구치고

가자미식해가 맛깔스럽게

익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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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탑은 늙지 않는다


- 권정남



바닷바람이 등을 떠민다

보퉁이를 든 어미와

손으로 북쪽을 가리키는 아들


전쟁이 끝난 70년

북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수평선 끝 목이 쉬도록 불러도

메아리로 돌아오는

창창한 별 같은 이름

수복탑은 늙지 않는다


동명항 바닷바람이

하늘과 땅을 비질하며

고향길 열어주지만 길이 없다


어린 아들 손잡고

치맛자락 바람에 맡긴 어미

물집 잡힌 발로

오늘도 걷는다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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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배, 그리고 속초


- 김종헌



남풍 부는 날

등 떠밀려

똑바로 가면

바로 단천인데


바람을 지고 갈

돛대가 없고


개 건너

중앙시장이 아니라

모래 언덕 하나 넘으면

푸르른 동해인데


뱃머리 돌릴

키 하나 없고


낡은 허리띠 같은 휴전선

보이지 않는 북방한계선

몸을 가로지른 무거운 철선


세 개의 선으로

속초는 갯배가 되고

갯배는 속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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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 바닷가에서


- 김향숙



내가 죽었다면

그것은 목울대가 메었기 때문이다

 

아바이 등짐에서 내린

다섯 살 속초 청호동


붓 펜 잡으시던 아바이는

오징어 명태를 잡으셨고

두고 오신 통천 어마이 손을

허공으로 잡고 떠나셨다

갈매기들 모래밭에

울며 받아 적고 울며 읽은 이름들

유언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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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


- 장은선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같이

그는 하루 종일 명상에 잠겨 있다


물속 깊이 다리를 담그고

거친 파도를 뒤집어써도

오히려 사람들을 걱정한다


그의 우직한 참선이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져

저마다 마음속 가득

속초 바다를 퍼담아 가려 한다


동해는 쉽사리 끝이 보이지 않아

저마다 욕심을 조금씩 덜어 낸 것들을

영금정은 양식으로 아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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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


- 최명선



불모지에 내린 실향의 닻


칠십 년 망향가는 끝내 목이 쉬고

잊힐까

벽화로 옮겨 심은 이산의 태꽃 위에

날마다 물을 주는 간절한 마음이여


살기 위해서 왔던가

가기 위해서 왔던가

한으로 지붕을 얹은 키 낮은 노둣돌


그 돌 뿌리 되어 청호동을 끈다

그 마음 밥이 되어 청호동을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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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 억새


- 송현정



눈 덮인 영랑호를

쓸쓸히 지키고 있는 억새


누구를 기다리느라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저 모습 그대로

봄을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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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에서


- 정명숙



돌아가리라는 희망 엮어

바다에 띄워 놓고

뱃길 열리길 기다리던

함경도 아바이들


지친 마음

깁고 또 기우며

한숨으로 부르던 망향가

모래 언덕에 묻어둔 채

떠나가신 길


고향 집은 잘 찾아가셨는지

가족들은 무고하신지

아버지 가신 길 바라보며

안부를 묻는다

실향 일번지 청호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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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속초


- 정영애



여기 속초야! 라고 말하면

멀리 있는 당신 발등에도

푸른 바닷물이 스며들 것 같은

속초라는 문장


우리는

오랫동안 쓰지 않은 편지

당신의 안부가

해무처럼 아득할 때

수평선을 밟고

거짓말처럼 나를 향해 걸어오는

당신


여기 속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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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닻의 슬픔


- 조외순



자그마한 뗏목으로

흘러 온 피난살이

꿈에라도 좋으니

갈고리로 휴전선을 당겨

고향으로 데려다주오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에

몸을 실어 고향 다녀와

그리움 풀어진 속초

닻을 내려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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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동


- 이진여



실향이라는 이름

얄팍한 혀끝에서

거품으로 스러지는 동안

아마이 아바이

가슴에 얹힌

돌덩이

칠십 년을 넘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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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 가자


- 홍성희



지독히도 출렁이는 거문고 타는 소리

가슴에 묻은 젖는 슬픔 달래려거든

목 놓아 울어도 좋을 영금정을 가자


누군들 슬프지 않으랴

누군들 외롭지 않으랴


마시긴 내가 마시는데

취하는 건 푸른 달빛에 일렁이는 바다

지독한 독주 담긴 퍼런 물을 마셔 보자


나는 나답게 울고

바다는 바다 대로 슬피우는 그곳을 가자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거든

해무 걷힌 길 반갑게 열리는

미시령 옛길을 가자


울산바위 병풍 두른 소나무 기상

우렁차게 솟아 저 멀리

힘차게 뛰노는 오징어 떼 숨 쉬는 그곳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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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두 개다


- 강영화



부모형제 두고 피난 온

아마이 아바이들 모였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산의 아픔 달래려고

속초 앞 바다 모래밭에 앉아


우리 엉마니 대문 활짝 열어 두고

툇마루에 앉아 기다리겠지


통일 그 약속은 왜 이리 긴가

기다림과 그리움에

검게 타버린 가슴


순옥 아마이

“이남에 보름달은 우리 고향 달

보다 작은가”


경자 아마이

“달이 똑같은 달이지

달이 두 개가 아니오”


동혁 아바이

“싸우지 맙세 남쪽 달

북쪽 달 두 개가 있소”


함경도민 망향탑에

모여 북쪽 달 보며

통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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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이야기


- 김선우



열아홉 새까만 눈동자

여린 가슴

설악산 애기 단풍

눈길 준 비너스 여인


울산바위 같던 그녀 마음

흔들, 흔들바위 되었네


정해진 이별 약속 시간 타들어 가는데


잃어버린 사랑 첫사랑

긴 머리 스카프 여인아, 긴 머리 스카프 여인아


이십 리 꽃길 따라

찾아온 영랑호

꽃향기보다 그윽한

긴 머리 여인 향기

가쁜 숨 몰아쉬며

떠나, 떠나 버린 그 여인


범바위 영랑정 끌어안고 그 사람 서 있네


지워 버린 사랑 옛사랑

긴 머리 스카프 여인아, 긴 머리 스카프 여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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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얼굴


- 이영수



금강산 오고 가자던 밀담의 악수

동해북부선 레일 녹슨 귀 세워 뒷말을 들으려 했다


악수의 온기 가시기 전에 총성이 울리고

기다림 파도 되어 모래만 토해 냈다

술잔 나누던 세월과 함께 칠성판에 누워

함경 평안 망향동산 비碑의 얼굴 되어 서 있네


한 생 끝나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넋

비바람 되어 떠돌고

아들의 아들 또 그 아들이 이곳에 올 때엔

밀담의 악수 연극이라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