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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시-권정남] 건봉사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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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64회 작성일 05-03-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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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담쟁이


오월 어느 날이었어
건봉사 적멸보궁 뒷뜰 담쟁이가
담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거야
천천히, 그리고 느릿느릿
가파른 담벼락에 온 몸 바싹 붙어서
생(生)을 오르듯이
맨손으로 그렇게 오르고 있었어
세상욕망 바람에 날려 버린 듯
집착의 끈마저 훌훌 털어 버린 게야
적멸보궁 염불 소리에 조용히 귀를 키우고 있었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바람이 이파리와 줄기를 세차게 흔들어도
우르르 초록 함성으로 몰려다니며
저희끼리 상처 내지는 않았어
저기 좀 봐 선두로 오르던 담쟁이가
기왓장에 올라앉아 맨손으로
하늘을 윤기 나게 닦고 있잖아
높이 오를수록 반질반질 그렇게 마음도
유리알처럼 닦아내는 거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도달하려고 하면
오월 석탑꼭대기, 꽃구름 그 너머로
느릿느릿
온몸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그렇게 올라가야만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