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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시-채재순] 그 나무가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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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60회 작성일 05-03-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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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가 걸어가고 있다


나무 밑에서 공기놀이하던 소녀가
저녁 노을 속으로 걸어간다

주름 많은 껍질과 잎들을 만지며
울퉁불퉁 쟁여온 시간들을 만나고 있다
땡볕에 나무를 돌고 도는
이 학교 졸업생이라는 칠순의 할머니

개교 당시 심었다는 왕벚나무
손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무심코 올려다본 나뭇가지,
그 사이로 본 하늘
삶이 쓸쓸해질 때
왕벚나무 부르며 그 그늘 안으로
수없이 들어갔다고

낮게, 낮게
생각의 가지를 드리워 만든 그늘이
일렁이고 있다
제 둥치는 썩어 들어가도
힘줄 세우며 잘도 뻗어 가는 가지들,
이파리들; 수 천 개의 푸른 기상 나팔을 불어 제키는

왕벚나무 그늘이 가득하다
그녀 안으로 나무가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