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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시-장승진] 중학교 졸업앨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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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05회 작성일 05-03-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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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앨범 앞에서


친구여
묵은 사진첩 속엔 추억만 살고 있는 게 아니었네
흑백으로 정지해 버린 과거의 시간들이
첫 장을 여는 순간
다시 깨어나 온통 나를 들쑤셔
들뜨게 만드는걸 보면 말일세

30년 세월이 바람 되어 날아간 그 자리엔
까까머리 단발머리 중학생들과
초로의 중년들이 함께 서 있네
함께 서 바라보며 배꼽잡고 웃기도 하고
한심해서 혀를 차기도 하고 또
무심한 세월에 빼앗긴 꿈들을 헤아리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하는 표정들이네

친구여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무우청처럼 푸르던 우리의 젊음을 기억하는가
꿈으로 탱탱했던 미래와
기대로 출렁이던 가슴을
불의와 타협하지 말자던 맹세를 기억하는가
이유도 모르면서 모두들
펑펑 울어대던 졸업식 답사를 기억하는가

세상은 넓고도 쉽지 않더라
작은 교정 떠나서 낯선 곳 헤매고 다닐 때엔
학창시절 생각이 절로 났건만
안부를 묻기도 쉽지 않았지
친구여
후회도 아쉬움도 여전한데 이젠
우리도 나이 들고 우리를 키워준 모교도 나이 들었네

배운 대로는 아니었지만
이제껏 부끄럼 없이 살려 애써 왔음을 상기하세
그리고 차분히 주변을 돌아 보세나
숱 많던 자네의 머리가 엷어지고
흰머리와 주름살이 늘어나지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청청하게
우리를 둘러 서 있지 아니한가

친구여
묵은 사진첩 속엔 역사만 살고있는 게 아니었네
젊은 날 뜨거운 숨결이 쉼 없이 이어져
오늘의 우리를 달구고 있음을
그리하여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를 만나게 하고 있음을
아는가 친구여
서로의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게 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