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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시-김춘만] 벌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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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17회 작성일 05-03-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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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전


들어가는 어귀부터 풀이 무성하다.
한철 극성스럽게 키를 키운 풀들이
땅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볼 수 없으니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겠다.
뱀에 물려 뒹굴던 아들 살린 어머니
바깥에 솥 걸고 찰옥수수 삶아주던 아버지
함께 계신 곳.
그곳까지 껑충걸음을 하다.
이 여름 아무도 밟고 가지 않았구나.
밟힌 풀대궁이 누우면서 길이 난다.
진한 쑥냄새와
여름밤의 모기불내와
삶은 옥수수 냄새도 난다.
화들짝 놀란 산새가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앉는다.
그곳에 주먹같은 돌배가 가득 열려있다.
모두가 더위를 피하느라고 정신 뺏긴 사이
이렇게 분주했구나.
무성한 여름을 걷어내기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