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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시-박명자] 강릉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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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91회 작성일 05-03-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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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산불


백두대간이 타고 있다. 나무 나무 가지마다 새순 고개드는
2000년 4월 7일 오전 8시 25분
강원도 사천면 석교리 공원묘지앞 초속20미터넘는 강풍은
횃불을 높이 들고 우리 산야를 미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무엇인가 분노에 가득한 나무들은 이미 불의 주식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나보다.
속고쟁이 너덜거리며 악쓰는 미친 불은 여기 저기 숲을 기웃
거리다가 맨 처음 주민들 삶의 터전인 송이산지를 잿더미로
만들어 던졌다.
다음에는 숲에사는 눈이 순한 산토끼, 관이 향그러운사슴들을
새까맣게 쓸어뜨리고〈사라져라.몽땅사라져/〉
목청 높여외치면서 기름진 산림에 횃불을 던졌다.
산불은 노여움을 어금니에 지긋이 깨물고 화난 눈을 번뜩
이며 천추에 맺힌 한을 불로 담근질하고 있다.
불길은(자수하라/) 붉은 죄를 속독법으로 읽으며 이산 저산
뛰어 나닌다.(가슴속 숨긴 죄, 뼛속에 감춘 욕심 모두 자백하라/)
민,관,군 3천 여명 헬기4대 소방차34대가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불길은 4차선 국도를 뛰어넘어 신들린
춤을 춘다.
화마가 휩쓸고간 산림 1천2백 핵타을, 조상대대로 문전옥답
다독거려감사안아 키우던 우리야산,
드디어 각혈하며 쓸어진다. 들어누운 산자락 기슭에 몹쓸
꿈들이 얇은 껍데기로 이리저리 나 뒹굴로 있다.
무서운 신의 심판 앞에 모인 주민들은 (네탓이다. 내탓이다)
제 각시 옷깃 사리며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