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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시-권정남] 회색 바람 같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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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89회 작성일 05-03-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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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바람 같은 여인


내 어린 시절 학동 댁이라고 부르는 회색 바람 같은 여인이 있
었다. 아궁이 앞에서 먹고 자고 하여 늘상 옷과 얼굴이 검어 몸
에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둘째 아이를 가슴에 묻고 난 후부터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 음습한 동굴 같았고, 어둠처럼 다물려져
있던 입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흰 이빨 번뜩이며 해괴한 소리
를 내곤 했다. 추운 겨울날 나는 그녀가 다니는 골목마다 나무
막대기를 쌓아 길을 막았고, 허리 살 허옇게 드러내며 물동이
를 일 때 면 그녀를 향해 세차게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검은
연기 같기도 하고 한 숨 같기도 한 학동 댁 수수께끼 같은 삶이
미워 그녀를 만날 때마다 우울했던 지난날 들
내가 그녀 만한 나이 되어 학동 댁 헝크러진 머리결이 그리워
히히 웃으며 쉰 냄새 풀풀 날리던 그녀가, 많은 세월이 흐른 지
금까지도 회색바람이 되어 내 가슴 위를 쏘다니고 있음을 알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