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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시-채재순]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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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46회 작성일 05-03-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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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뒷산이 울타리 되어 주던 집
텃밭에 파릇파릇 아욱이 자라던 집
대문이 없어
내 안에 수 없이 대문을 달곤 했던 집
펌프를 박으려해도 수맥을 찾을 수 없어
내 심중의 물길을 찾아 밤을 지새던 집
낮잠 들었다 깨어난 어느 저녁
식구들은 모두 어딜 갔는지
홀로 노을을 바라보던 집
그 후 오래오래 말수가 줄어들고
나를 읽으며 생각이 촘촘해지던 시간들
봄이 오면 잎 먼저 틔우고,
잎 지고 난 어느 여름 날
연분홍 꽃을 피워대던 상사화,
그 꽃으로 온통 환해지던 뒤란
내소사 대웅전 문에 새겨진
국화 문양 바라보다 떠오른 그 집
햇살 좋은 어느 가을
입으로 물을 힘껏 뿜어대며
창호지 위에 들국화 꽃잎 붙이던 그 때,
싸락눈 내린 겨울 아침이면
싸리비 자국 선연하던 우리 집 마당
그 곳을 떠나온 지 오래 되었지만
내 안 곳곳에서 아직도 내가 살고 있는
환한 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