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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시-박명자] 경포호 오리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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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60회 작성일 05-03-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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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 오리 떼


지난밤 이역만리 먼 곳에서 흘러온 저희들 날개 위에
4월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 부서진다

갈 숲에서 아침을 모의하던 계절의 난민들
편대로 비상하고 편대로 짝짓기를 한다

저 익명의 무리들에게 누가 절절한 구애의 노래를
가르쳤는가
맨발로 겨울을 건너온 홍장암이 숨은 사연을 안다는 듯
그윽한 밀실을 따로 비워주는 즈음

분홍색 벚꽃 잎들이 머리 풀로 하르르 하르르 최후의
시간을 접는다
그러나 홍장의 저고리 옷고름은 호면에 떨어져 녹지 않는다.

덧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밀어 올렸던 홍장과 순찰사 박신

못다한 인연을 떠올리던 갈 숲 어디선가 옥퉁소 소리
가냘프게 들려온다

벚꽃 잎들의 분분한 낙하
경호 호면을 스치고 치솟는 오리 떼의 날개짓......

순간 나는 신선의 옷자락을 보는 듯 가슴이 마구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