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0호2000년 [동화-이희갑] 칼라하리 사막에서 온 아저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02회 작성일 05-03-31 11:11

본문

환경이 주제가 된 동화모음 다섯번째이야기
칼라하리 사막에서 온 아저씨

“아빠,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나요?”
동수는 공항 대합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시계를 보며 말했습니다.
“글쎄다. 조금 더 기다리면, 아~ 음. 도착하겠지.”
동수 아버지도 조금은 지루한 모양입니다. 하품을 하며 동수를 바라보는
표정이 우스워 동수는 끼득끼득 거렸습니다.
오늘 공항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아빠의 친구 강성후라는 분입니다. 아빠
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지만 오랫동안 서로 소식을 몰랐다가 작년에서야
비로소 어디에 사는 지 알게 되었답니다.
성후 아저씨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부근에서 커다란 농장을 하고 있
습니다. 그 곳에는‘부시맨’이라는 부족들이 살고 있기도 합니다.
작년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텔레비젼을 보고 계시던 아빠가 벌떡 일어섰
습니다.
“아니, 아니, 제 제가 성후 아니야?”
아빠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텔레비젼의 화면에 나온 기자
는 그런 아버지의 표정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인간의 따뜻한 사랑이 오늘 한 한국인에 의해 이 황무지 칼라하리 사막을
꽃피우고 있습니다. 바로 강성후 씨의 인간 사랑의 승리요 이곳 주민과 부족
들이 그의 고마움에 다 같이 따라준 덕분입니다. 이곳은 칼라하리 사막의 오
아시스가 되었습니다.”
하며 줄줄이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여, 여보. 빨리 와 봐. 그 동안 내가 찾던 그 친구가 나왔어.”

다섯번째이야기
하도 아빠가 소리를 지르자 식사 준비를 하느라 손에 묻은 물기도 미처 닦
지 못하고 엄마가 달려왔습니다.
“야, 저 친구. 정말 멋진 일을 하는구만. 정말 저 집안 사람들은 훌륭해. 그
아버지 때부터 그렇게 남을 위해 살더니----.”
아빠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습니다.
아빠는 어릴 때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습니다. 부모님이 사고를 당해 하루
아침 고아가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친척도 별로 없던 동수 아빠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형식이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살도록 합시다.”
성후 아저씨 아버지는 동수 아빠를 집으로 데리고 와 친 아들같이 키웠습
니다.
동수 아빠는 공부를 아주 잘하였고, 성후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덩치가 크
고 힘이 아주 장사여서 둘이는 늘 서로 도우며 자랐습니다.
동수 아빠가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간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준백 사장.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 안데스 산맥의 오지로 떠나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동수 아빠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했습니
다. 성후 아저씨의 아버지 강준백 사장은 늘 자신이 벌은 돈 대부분을 가난하
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데 앞장 서 온 분입니다. 동수 아빠가 군대를 가
게되자
“동수야, 이제 너도 어른이 되었구나. 앞으로 네 힘으로 네 앞길을 헤쳐 나
가보아라.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룰 때 보람을 느끼는 법이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는
“내 이거 얼마 되진 않는다만 널 위해 조금 남겨둔 것이니 군대 갔다와서
더 공부할 때 쓰도록 해라.”
하며 통장을 쥐어 주었습니다. 동수 아빠는 그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
다. 아들 친구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대학까지 진학 시켜 주었던 그 은혜는 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 저도 남을 돕는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동수 아빠는 그 날 성후 아저씨의 아버지 앞에서 단단히 결심을 했습니다.
“난 언젠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
늘 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성후 아저씨의 아버지는 말씀대로 그 후 어디론

가 다른 나라로 떠났습니다. 물론 성후 아저씨도 함께 떠났지요..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동수 아빠는 결심대로 남을 위해 일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
고 성후 아저씨를 찾으러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까지 가 보았습니다. 하지
만 성후 아저씨는 그 곳에 없었습니다. 다만 성후 아저씨 아버지가 그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말만을 얻어듣고 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텔레비젼에서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성후 아저
씨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아빠는 방송국으로 연락을 하였고 곧 주소와 전화 번
호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오늘 드디어 아빠와 성후 아저씨가 만나는 날이 온 것입니다.
“앗, 저기다 저기 온다.”
아빠는 멀리서도 성후 아저씨를 알아보았습니다. 유난히 키가 크고 우람
한 성후 아저씨는 누구의 눈에도 잘 띄었습니다.
“성후!”
“형식이!”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다가 거세게 손을 잡았습니다.
“이게 얼마만인가?”
아빠의 눈속에는 눈물이 하나 가득 넘쳐 일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성후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빠의 등을 두드렸습
니다.
동수는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야, 아빠를 쏙 닮은 아들이 있었다니!”
성후 아저씨는 동수의 머리를 쓰담아 주었습니다.
아빠는 차를 몰아 올림픽대로에 접어들었습니다.
“우아, 이런. 저 저건 또----.”
20년만에 눈 앞에 나타난 서울 풍경은 성구 아저씨의 눈에는 모두가 놀라
움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멀리 남산과 북한산 쪽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
하늘을 덮은 뽀얀 연기같은 것 때문입니다.
올림픽대로에는 많은 차들이 밀려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들이 너무 많아. 차마다 서서 내품는 매연이 아름다운 서울 풍경을 다
가리고 마는구나.”

성후 아저씨의 말에 아빠는 부끄러운 듯 말했습니다.
“미안하네. 나도 차를 운전하지만 사실 서울의 공기는 자동차 매연으로 가
득차있다고도 할 수 있네. 서울에 있는 차만 220만대가 넘으니까.”
“ 20년 전 만해도 서울은 이렇지 않았는데.”
성후 아저씨는 기침을 약간 하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어느새 아름다운 불빛으로 멋을 내고 있는 남산 타워에 올랐습
니다.
“그래도 서울의 밤 풍경은 아름다워.”
성후 아저씨는 아직도 고국에 돌아온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후드드득!”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성후 아저씨가 팔을 벌리고 밤하늘을 우
러러 보았습니다.
“오, 비다. 비!”
성후 아저씨는 비를 보더니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안돼. 비맞으면.”
아빠가 얼른 우산을 펴 성후 아저씨의 머리 위를 가렸습니다. 어리벙벙하
고 있는 성후 아저씨를 보고 아빠는
“이보게. 서울의 비는 칼라하리에 내리는 비하곤 달라. 이 비는 산성비야.
대기 중에 오염된 물질이 함께 내리는 죽음의 비란 말이야. 식물과 동물, 사
람들을 다 병들게 하는 비라구.”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는 아빠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자, 어서 우리집에 가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하세.”
아빠는 서둘러 남산을 내려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성후 아저씨는 그래
도 좋은지 비내리는 서울의 거리를 보고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동수 아빠는 일년내내 비를 기다리며 사는 친구가, 고국에 와서도
마음껏 비를 맞아보지도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은 밤과 같이 어
둡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