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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동화-이희갑] 두더지 가족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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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43회 작성일 05-03-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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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주제가된동화모음 세번째이야기
두더지 가족의 이사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어요. 산 위에 덮힌 하얀 눈이 사르르 녹기 시작
했어요. 얼었던 땅 위에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어요.
“봄이 왔구나. 우리도 이제 일을 할 때가 되었다.”
아빠 두더지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어요.
“얘들아 이젠 잠에서 깨어나야지.”
엄마 두더지가 맛있는 아침을 짓는 냄새가 코로 솔솔 들어왔어요.
“제일 늦게 일어난 두더지는 설거지 하기다.”
아빠 두더지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으아, 난 설거지가 싫어.”
“나도, 나도 싫어.”
“으, 싫어.”
하고 두더지 삼형제는 후다닥 일어나 식탁으로 달려나왔어요.
“안돼. 세수하지 않은 두더지는 아침 밥 못먹기다.”
엄마가 두 팔을 내밀어 두더지 삼형제를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어요.
“그래, 우리 두더지는 우선 코와 수염을 잘 씻어야 해. 코가 막히거나 수염
이 지저분하면 냄새를 못 맡거나 감촉을 느끼지 못해 먹이를 구하는데 어려
움이 있을 거야.”
아빠 두더지도 팔을 내밀어 두더지 삼형제가 다가오는 걸 막았어요.
“음냐 음냐, 엄마 아빠는 너무해.”
두더지 삼형제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습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두더지 형제들이 말끔한 얼굴이 되어 나오자

“와 우리 아들들 얼굴이 환해졌구나. 그럼 이제 식사를 해야지.”
하며 엄마 두더지는 맛있는 음식을 그릇에 떠 담아 식탁 위에 놓았어요.
모두 맛있는 아침을 먹었어요. 아침 식사가 끝나자 아빠 두더지가 말했어요.
“이제 겨울 잠에서 깨어났으니 일하러 나가야지. 지금 땅 속은 거의 다 녹
았어. 겨울잠에서 아직 못 깨어난 벌레들과 동물 새끼들이 많은 때가 바로 이
때지. 이 때를 놓치면 먹이를 구하는 일이 어렵게 된단다. 알겠지? “
아빠는 앞발을 들어 아들 두더지에게 보이며 말했어요.
“자 이번엔 앞 발을 살펴 보아라. 앞 발이 약하면 땅을 팔 수가 없지.”
사실 두더지의 눈은 아주 작고, 잘 보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코로 냄새를
맡아 먹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아내지요. 그리고 수염으로 먹이의 종류와
위치를 알아냅니다. 물론 땅을 파헤쳐 나가는 앞발은 매우 강합니다.
“으그, 앞발에 때 좀 봐라.”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괜찮아요. 엄만 괜한 걱정을 하세요.”
“그래 그럼 지금 먹이를 구해 오너라. 오늘이 첫 먹이 구하는 날이니까 조
심들 하거라. 첫째 두돌이는 동쪽으로 가거라. 둘째 두달이는 서쪽으로, 막내
두굴이는 남쪽으로, 엄마는 북쪽으로, 나는 땅 밖으로 나가 보겠다.”
아빠 두더지의 말이 끝나자 모두 먹이를 찾으러 사방으로 흩어졌어요.
“엉차, 엉차”
“응차, 응차!”
“잉차, 잉차!”
두더지 삼형제는 앞발로 열심히 땅을 파 나갔어요.
“어? 이상한 냄새가 난다!”
두돌이는 땅을 파나가다가 제자리에서 멈추었어요. 그리고 코를 갖다대고
살펴보았어요.
“응? 이건 뭐야.”
두돌이는 깜짝 놀랐어요. 두돌이가 땅을 파고 가다가 마주친 것은 땅 속에
묻어놓은 플라스틱들이었어요. 두돌이는 더 이상 땅을 파고 나갈수가 없었어
요. 사방엔 모두 플라스틱으로 묻혀져 있었기 때문이예요.
한 편 두달이도 땅을 파 나가다가 이상한 물건을 만났어요.
“이건 뭐야. 바삭바삭하네.”

두달이는 스치로폼이 묻혀있는 곳으로 갔던 거예요. 스치로폼은 사방에
꽉 차있었어요. 두달이는 스치로폼 가루가 콧속과 귓속으로 들어와 더 앞으
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으잉! 이게 뭐야?”
막내 두굴이도 땅을 파고나가다가 물컹물컹한 물건을 만났어요. 두굴이는
가만히 다가가 수염으로 물건을 만져보았어요. 부드럽기도 하고 미끄럽기도
했어요. 두굴이는 앞발로 슬쩍 쳐보았어요. 그러자 뭔가 터지는 듯하더니 갑
자기 심한 악취가 났어요. 두굴이는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두
굴이는 더 이상 땅을 파고 나갈 수 없었어요. 두굴이가 마주친 것은 썩은 음
식물이 들어있는 비닐 봉지였어요.
집으로 돌아온 두더지 가족들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어요. 우선 너나 할 것
없이 샤워부터 했어요. 온 몸이 더러운 쓰레기로 지저분했거든요. 마지막으
로 샤워를 마치고 목욕탕을 나온 아빠 두더지가 말했어요.
“여긴 우리가 살 곳이 못돼. 모두 썩지 않는 쓰레기더미뿐이야. 내가 가
본 곳은 녹슨 철근들이 가득 묻혀 있었고 네 엄마가 간 곳은 깨진 병조각들
뿐이었어.”
아빠 두더지는 긴 한숨을 쉬었어요.
“작년엔 이러지 않았는데 지난 겨울동안 사람들이 썩지 않는 쓰레기를 이
곳에 묻어버렸어. 이젠 우리뿐만 아니라 이 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도 살 수
가 없게 되었어.”
두더지 가족들은 서둘러 이삿짐을 쌌어요.
엄마 두더지는 조금밖에 남지 않은 양식 주머니를 보고
“잘못하다간 굶게 생겼다.”
하고 걱정을 하였어요.
아직도 밤이면 찬 바람이 불고 있는 벌판을, 두더지 가족은 힘없는 걸음으
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땅 속에 쓰레기가 없는 새로운 땅을 찾아 이사를 가는 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