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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동화-이희갑] 무지개 길의 세 그루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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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30회 작성일 05-03-3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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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주제가된동화모음 두번째이야기
무지개 길의 세 그루 나무


무지개 길이 새로 생겼어요.
곧고 기다란 길이었어요. 아주 넓고 평평한 길이었어요. 사람들이 그 길을
무지개 길이라고 불렀어요.
사람들은 길을 만들면서 파해쳐진 길 옆에 잔디를 심으며 다시 푸르게 만
드는 일을 했어요. .
무지개 길이 처음 생길 때 괴상한 자동차들이 하루 종일 소리를 내며, 산
을 마구 밀어내고 논과 밭을 갈아엎었어요. 그러자 그 곳에 살던 동물들은 무
서워서 다 도망가고 말았어요.
사람들은 심은 잔디가 길가를 파랗게 물들이자, 그 다음에는 길가에 나무
를 심기 시작했어요.
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이 달빛 아래서 그림자를 드리우자 떠났던 동물들이
하나 둘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어느 덧 무지개 길에는 곤충들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어요. 참 아름다운 무지개 길이었어요.
무지개 길 옆에 서있는 나무를 보고 사람들은
“야, 가로수가 참 멋지게 자란다.”
하고 말했어요. 가로수들은 정성드려 자기를 심어준 사람들이 무척 고마
웠어요.
무지개 길이 끝나는 곳엔 키가 비슷한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어요. 잣나
무, 미루나무, 은행나무였어요.

나무들은 자기들이 살던 고향 이야기를 했어요.
“난 아주 깊은 산 속에서 살았지. 높은 벼랑에 길도 없는 곳이었어. 그곳에
는 곰, 산양들이 많이 살았어. 참 공기 맑고 시원한 곳이었지.”
잣나무의 이야기가 끝나자 미루나무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우리 가족은 큰 강가에서 오래 살았지. 강에는 늘 시원한 바람이 불었어.
그 곳에는 물새들이 많이 살았어. 가끔 아이들이 찾아와 수영하던 모습도 볼
수 있었지.”
미루나무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 번에는 공원에서 온 은행나무가 말했어요.
“난 사람들이 쉬러 오는 공원에서 살았지.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었어. 공원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아.”
“참 좋은 곳이었구나.”
세 그루의 나무들은 서로 다른 나무들이 살았던 곳에 살고 싶다고 말했
어요.
“그런데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니?”
은행나무가 말을 꺼냈어요.
“어느 날이었어. 난 잣을 많이 달고 있었어. 그런데 내 앞으로 웬 사람이
다가오더니 매우 귀한 잣나무라고 보호를 해야한다는 거야. 그러더니 며칠
후 사람들이 나를 파가지고 수목원으로 보냈어. 그런데 나 같은 나무는 그곳
에 얼마든지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날 이곳으로 보낸 거야.”
잣나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살던 강가는 댐으로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어. 할 수 없이 다른 미루
나무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된거야. 그 곳은 이미 물 속에 잠겨있을 거야.”
미루나무는 아쉽다는 듯이 떨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가 있던 공원은 모두 다 파해쳐 졌어. 그 곳에다 큰 기념관을 만든다는
거야. 나도 그래서 이곳으로 오게 된거라구.”
공원에서 온 은행 나무는 그리운 눈빛을 하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무들이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이른 아침이었어요.
“끼링끼링 끼끼끼”
이상한 소리에 나무들은 눈을 떴어요.
사람들은 이 번에도 이상한 자동차에 무엇인가 가득 싣고 오더니 무지개

길 위에 쏟아 부었어요. 하루종일 매케한 기름 냄새가 났어요. 나무에도 잔디
에도 시꺼먼 기름이 튕겼어요.
싱싱한 바람 냄새와 향기로운 꽃 냄새가 가득하던 무지개 길에는 속이 메
스꺼운 기름 냄새가 대신 차지하고 말았어요.
며칠이 지나자 무지개 길은 까만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어요. 그 다음엔 수
없이 많은 자동차들이 몰려왔어요.
“씨-잉, 씨이잉!”
자동차는 아주 빠르게 달려가고 달려 왔어요. 낮에도 밤에도 자동차의 소
리는 끝이 없었어요.
새들은 날아 가버렸어요. 동물들도 슬금슬금 빠져 나갔어요. 그러나 나무
들만은 그대로 서 있었어요. 혼자의 힘으론 어디를 갈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
었어요.
무지개 밤길엔 달빛보다 더 밝은 자동차 전조등이 비췄어요. 가로수들은
더 이상 달을 보며 재미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지요.
날이 갈수록 무지개 길에는 더 많은 차들이 몰려들었어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자동차가 밀려 거북이 걸음을 하기도 했어요.
“부릉부릉 부르르릉”
“빠앙 빵. 부아아앙”
자동차들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뒤꽁무니에는 매연이 펑펑 쏟아지고 있
었어요.
무지개 길은 매연으로 가득찼어요. 매연은 나뭇잎의 숨구멍 속으로 들어
갔어요.
“머리가 아파!”
“가슴이 답답해!”
“속이 메스꺼워!”
나무들은 울상을 지었어요.
그러나 자동차들은 나무들의 괴로움을 아는 체도 하지 않았어요. 서로 매
연을 내뱉고 달아나기에 바빴거든요.
일년, 이년, 삼년이 지났어요.
무지개 길 위에 있던 나무들의 잎에는 더덕더덕 검은 때가 달라붙었어요.
그리고 점점 누렇게 변해 가고 있었어요.

잣나무 세갈래 나뭇잎은 누르스름하며 마르기 시작했어요.
미루나무 넓은 잎에는 검은 점이 여기저기 박혀 버렸어요.
은행나무 동그란 잎은 노랗게 물이 들기 전에 떨어지고 있었어요.
“아, 싱싱한 바람이 부는 깊은 산 속으로 가고 싶어.”
“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가로 가고 싶어.”
“아, 사람들이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공원으로 가고 싶어.”
나무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매일 매일 가쁜 숨을 내쉬었어요.
무지개 길에는 더 이상 나무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