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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수필-이은자] 해맞이 공원에서 만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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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28회 작성일 05-03-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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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공원에서 만난 어른


고향 가는 발걸음은 누구에게나 설레임과 흥분을 동반한다.
칠흙같은 밤이라 하더라고 대관령 고개를 넘고 사천을 향해 달리는 차창
으로는 어김없이 고향의 내음이 먼저 반긴다. 바다 냄새, 해초의 향기…
올봄 나는 팔순이 넘는 노모가 그리도 떠나기 싫어하시는 속초에서 그 분
을 서울로 모셔오는 일로 자주 대관령을 넘나들었다. 그 와중에 해맞이 공원
을 알게되었고 오랜 옛적에 속초의 기초을 닦아놓으신 한 분 할아버지의 공
덕비가 그 곳에 새로 단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해맞이 공원은 내물치 국도변 설악산 입구 쯤에 있다. 조선시대 우암 송시
열 선생이 함경도 덕원에서 거제도로 유배되어 동해안을 따라 이곳을 지나다
가 날이 저물어 머무르게 되었는데 폭우로 물이 불어 며칠 더 체류하다 떠나
면서‘물에 잠긴 마을’이라 물치(勿淄)라 불렀다고 한다.
탁 트인 바다를 앞에 놓고 해송과 조각이 어우러져 현대 문명에 찌든 시민
들과 나그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쉼터인 해맞이 공원은 국도를 사이에 두고
해변 쪽과 뒤에는 농지를 낀 상태로 양분되어있다.
해안쪽에는‘속초의 노래비’와‘효도 전장비’가 여러개의 조각품들 사이
에 있고, 농지쪽에는 한가로이 박상희 할아버지의 공덕비만 의연하게 서있
다.
사방 5m의 정방형 난간 안에는 화강암 거북상이 2m의 까만 오석비를 그

등으로 바치고 동해로 나아가려는 듯 머리를 쳐들고있다.
글쓴이는 이시행 선생이시다.
이 공덕비는 전 속초시 문화원장을 역임했던 김종록 선생이 비추진위원장
을 맡아 몇년 전에 완공하였으나 속초를 위시한 인접항 포구가 개발과 도시
계획이 빈번함에 따라 이 공덕비도 이곳 저곳 몇 차례나 자리를 옮겨 앉았다
가 금년 한식을 기해서 몇 분, 의식있는 어르신들의 뜻과 속초시의 협조를 받
고 비추진의원들과 직계 후손들이 손수 나서고 해서 이 자리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급변의 물결속에 놓인 우리는 미처 옛것의 소중함을 지키고 간작하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역사란 역사의식을 가지고 보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
이다.
속초는 수복지구로서 특이한 행정체제와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어왔던 고
장이다. 얼마전 까지도 속초는 나그네의 도시같은 문화와 행정을 면하지 못
했다. 박할아버지의 공덕비가 새로이 인식되고 놓일 자리에 놓이고 한다는
사실은 한 개인이나 가문의 자존심과 명예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기에 나는
일부러 그 곳에 갔고 비문을 간추려 적어왔다.
박상희 옹은 초대 속초읍장이시다. 토목기사였던 그 분은 부산시 도시계
획에도 참여한 바있다. 속초라는 행정적인 이름도 없던 그 때 덕촌면장(대포
리)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도지사를 방문하여 속초(도천리)항 개발의 필요성
을 개진하고 현지를 답사케하여 자신의 구상을 피력한 사실은 선각자의 기풍
이라 하겠다.
3.1운동을 거쳐 배일 사상이 팽배됨에 일제는 회유책으로 1925년 강원도
평의회에 위촉하고 그분의 강직한 인품과 고매한 인격에 경탄하여 1928년
도천면장에 촉거하였다. 그 후 속초축항의 대역사를 과감히 결행하여 방파제
를 축조하는 동시에 청초호의 수구(水口)를 준설(浚渫)하여 속초항의 면모
를 갖추었으며 시장을 신설하고 면소재지를 대포(도천면)로 부터 속초라 개
칭했다.
이어서 그분은 육로개척이 절실함을 부르짖어 동해안을 연결하는 경춘철
도 연장에 관한 계획을 관계 요로에 인정받고, 설계 측량을 완료해놓았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로 무산되는 좌절을 겪으셨다.
1942년 도천면을 읍으로 승격, 지명을 속초읍으로 하여 초대읍장으로 취

임하셨다. 1948년 59세의 짧은 일생을 마치시기 까지 속초항의 미래를 내다
보신 항만 기사!
진흙탕에 천만 가옥이 들어앉을 자리로 예언하여 만천동이라 명명하신 어
른을 우리는 이제야 평안히 좌정하게 하였다는 죄송함 마저 들었다.
살기에 급급한 우리들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고향을 떠나 살건만 고향 속
초 초입에 묵묵히 좌정하고 계신 박상희 할아버지의 애향심 그리고 역사의식
과 선각자의 시선을 길이 이어갈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세계역사의 격돌속에 있으면서도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 시대
에 역사의식을 가지고 후세를 위한 비젼을 지니고 사셨던 어른, 속초는 그런
선대를 가진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내 친구 박00씨, 개인적으로 멋진 할아버지의 손자임이 부럽다.
지금껏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선대의 예지와 애향심을 이어갈 것을 믿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