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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수필-이은자] 선가(船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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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11회 작성일 05-03-3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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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船價)


올 가을 TV화면엔 내 고향 풍경이 자주 비쳤다.
드라마‘가을 동화’때문이다. 갯배를 넘나드는 사람들과 그 주변이 렌즈
에 많이 잡혀 나왔다. ‘갯배’는 이제 속초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갯배를 지키는 지킴이가 있어 갯배가 속초의 명물
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몇년 전 부터 속초에서 주간(週刊)으로 발간되는‘설악신문’에 한 사진작
가엄상빈의 작품‘청호동 가는 길’이 소개되고, ‘갯배’는 조만간 사라질 것
이라는 사연을 부연하고 있었다.
가끔 고향을 찾아가보면 사라져가는 옛 것들에 대해 배반감이 일었다. 고
향에 살지도 않으면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마는‘갯배’도 결국 사라져가는
운명앞에 놓인 터라 서운했었다.
그런 가운데 관광 엑스포를 치르게 되었고, 속초를 상징할 것들을 챙기는
데‘갯배’도 꼽힌 것이다. ‘갯배’가 그래서 살아남았다.
‘갯배’를 타고 청호동 쪽에 내리면 선가를 내야 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
갯배삯은 코흘리개 아이들의 군것질 수준도 안되는 적은 돈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안 내는 사람들이 있다. 없어서도 그렇겠지만
장난끼로 그러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갯배삯 받는 이에겐 중요한생업이
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그까짓 적은 돈이니까...
처음 갯배를 운영했던 사람은 별명만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조막손
영감’이다. 한 쪽 손이 상해를 입어서 조막손이 된 사람이었다.
보잘 것 없는 선가를 받았지만 그 속에서 아들을 대학까지 마쳐주었다. 그
의 아들은 지금 시내에서 행정사법서사로 성공하여 잘 살고있다.
두번 째 갯배 주인은 김00아저씨였다. 갯배 영업권은 속초시에서 공개 입
찰로 선정한다. 세번 째 주인은 높은 입찰 가격을 들이대서 따낸 사람이었다.
김00아저씨는 밀려난 셈이다. 꽤나 짭잘한 사업일거란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적자를 보다말고 경영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다시금 시행한 공개 입찰 때에는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힘 들이지
않고 가장 적합한 조건하에 경영권은 김00아저씨에게로 되돌아왔다.
이젠 아무도 그에게 도전장을 내지않는다. 몇 년 내리 김아저씨가 운영하
고있다. 앞으로 주욱 그리 될 거라고들 한다. 갯배에 관해서라면 그를 능가할
자신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청호동 주민이면 뱃삯을 내지 않게 되어있다. 그외 모든 이용자는 예외가
없다. 그런데 그 청호동 주민을 알고 가려내는 일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일
의 첫번 째요 전부이다. 신분증을 일일이 내보이는 것도 아니고 얼굴에 청호
동 산다고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면식 하나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김아저씨는 그 면에서 백발백중 쪽집게요 도사이다.
어떤 낯선 사람이 선가를 안내며 청호동에 산다고 우길라치면 아버지 성
함이 누구냐, 몇통 몇반이냐, 언제 청호동으로 이사 왔느냐, 다른 식구는 누
구 누구냐…
동거인이라 둘러대면 아무개네는 그런 동거인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아저씨다. 누구도 감히 거짓말로 빠져나가진 못한다.
컴퓨터에 입력된 호구조사 사본을 손에 들고 있다해도 아저씨만치 신속
정확히 식별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집 난 이(시집간 딸)와 그 딸린 가솔들 까지도 알아 맞추는 능력이
있는 아저씨다. 그 분의 청호동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소식통은 과히 전문가
수준이다. 이런 것들을 생업과 사람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라 말해도 되지 않
을까.
속초는 관광 뿐 아니라 북방교역의 요지로 지금 비대해지고 있지만, 갯배
하나 평생업으로 가꾸고 이어가는 김 아저씨 같은 지킴이들이 없다면 가능했
을까. 청호동에 볼 일 있는 사람들은 김 아저씨의 선가를 속일 생각일랑 아예
말 일이다. 공연한 수고로 시간만 낭비하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