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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수필-이은자] 지 아이 (G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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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16회 작성일 05-03-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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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아이 (G I )


몇 년 전부터 내 친구 지연이는 잘 운다.
본디 익살 맞고 다정한 친구인데 육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사는 이야기
를 할라치면 말하다 말고 끝내는 운다
지연이를 웃게 하려먼 우리가 속초고등학교를 다니던 그 옛날을 떠올릴
때만이 가능하다. 그녀가 우리에게 웃기는 소리를 할 수 있었던 옛 일들 중에
지 아이 (G I)라는 것이 있다.
지금도 그 말이 귀에 쟁쟁하니 들리는 듯 하다.
“G I ! 단내지 스꼬시 기브미 프리즈. 단내지 해부노, 찹찹 워찌가나두”
새로 부임한 영어 선생님에게 별명을 붙이는 일은 아주 쉬웠다. 빙어처럼
투명한 피부에 마르고 휘청거리는 큰 기, 작은 입매, 속삭이듯 표준어만 구사
하는 간지러움 (우린 그 때 그렇게 느꼈다) 하늘색 양복 정장, 금테 안경......
선생님의 별명은 영국 신사로 정해졌다. 우리와 아직은 익숙해지지 않았
던 어느 날 수업 시간의 일이다.
그 때 우리가 배우던 영어 교과서는‘내셔널’에서‘유니온’으로 바뀐 직후
였다. 영국 냄새가 짙던 영어가 미국 냄새 쪽으로 전환된 셈인데 딱딱한 문법
보다는 실용회화 쪽으로 비중이 커져있었다. 그 분의 발음은 우리에게 무척
생소했는데 그게 오리지널 본토 발음이란다. 본토 발음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했지만 우리 학교에 부임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분은 미군 통역 장교였
다는 사실이 그걸 뒷받침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G I를 아세요?”
선생님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번쩍 쳐든 지연이는 곧 뒤를 돌아
보며 같은 마을에서 유학 온 친구 H에게 눈짓을 보냈다. H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손사래를 쳐댔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하지만 지연이는 자신 만만하게 쳐들었던 손을 거두어 넣을 수가 없었다.
어느 새 선생님께서 옆에 와 서 계셨기 때문이었다.
“G I 에 대해 말해봐요.”
“네, 그게 미군 헌병이란 거래요. 저어 우리 마을에서는... 대진에서는 그
렇게 말하면 다 통해요.”
손 쳐들 때의 기세는 어디 가고 지연이는 금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떠
듬떠듬 말했다.
“그게 전분가?”
“아니래요. 그렇지만 말 못 해요.”
지연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들은 책상를 두들기고 발을 구르며 자지러
지게 웃었다.
선생님에게 말 못한 그 대목을 우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진은 북방 한계선 바로 밑에 자리한 작은 마을 이름이다. 어촌이기도 하
고 농촌이기도 하다. 민통선 마을 명파리에 가려먼 그곳 검문소를 통과해야
만 된다. 그러니까 대진에서 살던 지연이는 H와 함께 속초고등학교로 유학
온 셈이었다.
육이오란 참상 이후 우리가 겪은 가난은 웬만큼 나이 든 세대에서는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던 곳, 바닷가에서는 그 가난이 더 극심했을 게다.
땔감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제대로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본다.
H의 언니는 너댓살 위인데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웠다. 어린 H들을 데리고
아주아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군 초소로 간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났
을까? 그리고 지엄한 미군 헌병에게 말했다.
“지 아이, 단내지 스꼬시 기브미 프리즈 단내지 해부노 찹찹 워찌가나 두”
번역하자면 일본말 미국말 섞박이인 셈인데“헌벙 나리 땔 나무를 조금만

주세요. 땔감이 없으니 밥을 어떻게 해 먹을 수 있겠나요. 제말 적선하시유.”
그 때 흰둥이들은 못 알아듣겠다며 막무가내로 쫓아냈다. 인정은 검둥이
들이 더 낫더란다. 설움 당해본 인간들 끼리 통하는 정이었는지...
하지만 꼭‘스꼬시 스꼬시’다짐을 하고서 탄약 상자 포장했던 나무 판자
를 몇 개씩 안겨주었다. 그 스꼬시 덕분에 며칠 뒤에 다시금 초소에 가도 또
스꼬시만큼 땔감을 얻어내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사설을 엮어대는 억양과 몸짓은 지연이가 아니고선 아무도 제 맛
을 살리지 못한다는데에 그녀의 노하우가 있다. 각설이 타령을, 그 사설을 제
아무리 줄줄이 엮어대도 아무나‘품바’는 아니듯이 G I도 마찬가지다. 나도
이처럼 글로 옮겨 적을 수 있으리만치 외곤 있지만 지연이처럼 구수하지도,
웃음을 자아내지도 못한다. 그녀의 연기력은 일품이었다. 아주 측은하게 또
능청스럽게......
지연이의 G I는 열두번도 더 들은 이야기지만 번번히 우리들을 배꼽 쥐게
만든다. 우리를 자지러지게 웃게한 뒤에야 자기도 참았던 웃음을 쏟는다. 극
도로 절제된 연기력이다.
춘향전을 보더라도 이본(異本)이 무려 54권이나 된다고 한다. 춘향전을
영화로 다시 찍고 한 것도 금년이 12번 째라 한다.
왜 그렇겠는가. 아리랑 만치나 다 아는 이갸기를 가지고 왜 지고새고 또
찍고 찍어내는가.
그건 사람들이 끊임없이 좋아하고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지연이의 G I도 우리 동기들에겐 언제 들어도 재미나는 고전(古典)이다.
그 전수자는 아직 없다. 지연이만이 유일한 기능 보유자다.
그녀는 대진에서 재력이 있던 양친 슬하에 무남독녀였다. 그녀의 결혼도
우리의 선망을 받아 마땅하였다. 우리 모두에게‘오빠’였던 2년 선배의 청혼
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오빠는 미남인데다 크리스천이라 품행 방정하고 우
리 학교 밴드 지휘자였다. 둘은 결혼 후에 서로 손이 귀한 터라 딸 딸 아들 아
들 딸 낳고 복이 넘치게 살았다. 어려운 지역 사회에서 이웃 사랑 아끼지 않
았고 이따금 들르는 벗들에게 따뜻한 대접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 뜨셨으나 어머니는 장수하셨다. 그들 내외는 노모 앞
에 늘 다소곳 무릅을 꿇고 순종하며 임종 까지 지켜드렸다.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도 자리잡혔다 싶더니 지연이는 남편을 믿고, 남편

은 수하의 사람을 믿어 사업을 하다가 송두리 째 사기를 당했다.
본래 영악하지 못한 두 사람은 도망자를 나름대로 추적하다가 힘에 겨워
포기했다. 난생 처음 엄청난 시련과 가난을 떠안았다. 집까지 잃었다.
막내딸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아놓고 울고, 휴학하고 군에 입대하는 아들
을 보내고 울고, 큰 아들 장가 드릴 일 앞에 놓고 울고......
사는 이야기 할라치면 지연은 그저 운다. 우리의 위로가 무슨 의미가 있을
까마는 그래도 우리는 그녀를 위로했다.
어머니 생존시에 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잃어버
린 자는 발 뻗고 잠자도 훔친 자는 발 오그리고 잔단다. 아이 어른 모두 건강
하니 그중 다행이 아닌가? 한 문을 닫으시면 또 다른 한 문을 얼어주시는 하
나님을 믿는데 왜 절망하겠느냐? 기다리자......
그렇게 세월이 가는 사이 막내는 대학을 마치고 마음에 드는 직장도 구했
다. 금년 가을 지연이는 큰 아들을 장가드렸다. 그녀는 좋은 사람들과 사돈을
맺는 축복을 받았다. 그녀의 상처입은 마음에 훈훈한 기운이 깃들이기 시작
했다. 친구들은 내 일같이 함께 기뻐하고 감사했다.
이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오면 몇몇 친구를 불러모아 지연이와 함께 조촐한
온천 여행이나 가야겠다. 가서 질펀하게 자리 깔아놓고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지연이의 G I를 들어보리라. 그래서 그녀도 웃고 우리도 함께 넘치게
웃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