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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수필-이구재] 철저한 자기인식의 삶-박명자 시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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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10회 작성일 05-03-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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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자기인식의 삶
-박명자 시인에게


“이 시인 몸 건강해요?”사흘이 멀다하고 안부 전화를 거는 박명자 시인
을 나는‘박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30여년을 천직인 양 교직에 몸 담고 기쁨으로 소명을 감당하는 교사
이기도 하다.
내가 박선생님을 처음 만난것이 30대 초반 이였으니 거의 20년 지기가 된
셈이다.
이곳 동해 바닷가로 이사 온 지 몇 해 안되어서의 일이니 속초에 어떤 문
학인 모임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지방 뉴스만을 듣고 황급히 찾아
간 곳에서 박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갈뫼 출판기념 문학강연 초청 문인 이범선 선생님 황금찬선생님]
사실 그때 나는 은사이신 이범선선생님을 졸업 후 10여년 만에 처음 만나
뵙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갈뫼회원이 누구누구 이었는지 보다는 오랜만에 뵙는 은사님과 얘기꽃을
피우기 정신없었다. 생각컨데 그런 나에게 박선생님은 저만치 물러서서 질투
어린 눈길을 주고 있었던 것 같았다. 후일담이지만 두 분 선생님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사실에 시샘나더라 했다.
나는 습작기에 있던 주부에 불과했고 본인은 등단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터였는데 그랬다. 그러나 박선생님의 첫인상이야말로 대단한 노력가로
보였으며 우아한 자태로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은 귀품이 풍기기까지 했다.
그러니 나는 그를 질투했고 그 또한 내심 나를 질투한 셈이었다.
십수년을 지내온 지금 우리는 너그러운 맏언니와 동생 같은 끈끈한 정이
도타와짐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박선생님의 열성은 문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이거나 주위의
어떤 상황에도 철저함을 몸전체로 표출해 내는 시인이기도 하다.
박선생님의 습관 하나를 나는 무척 부러워 하고 있다.
누구와의 약속은 물론이고 대화 중에도 곧잘 수첩을 꺼내 들고 이야기를
적어 놓곤 한다. 또는 맘에 드는 노래의 가사라든가 아름다운 낱말의 간판도
메모해 놓고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메모의 습관은 이어진다.
우리의 나이쯤 되면 더러 무엇을 잊어 버리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하는 나
의 안일한 태도는 오히려 깜박 잊혀진 그 일들 때문에 낭패를 보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리 못했다.
박선생님의 시는 결코 쉽게 읽혀지고 금방 가슴에 와 닿는 그런 시는 아닌
편이다.
“시를 향하여 엄숙히 무릎을 꿇고 낙수물처럼 모은 나의 분신”이라 할만
큼 삶이 시이고 시가 생활이 되어 각고의 나날을 바쁘게 사는 분이다.
또한 수줍어 하는 성격과 순진무구한 행동도 여전하다. 먼 옛날 박선생님
의 연애 한 토막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그분과(박선생님 남편) 경포 바닷가를 거닐다가 갑
작스런 포옹을 당했는데 박선생님은 너무 놀라 기절하여 모랫 벌에 쓰러져
누웠고 그분은 물바가지를 구해다가 물을 끼얹어 겨우 깨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아름답고 깨끗한 사랑을 했구나 싶었다.그토록 하늘 같이
모시던(남편 밥상을 들여 놓고는 뒷걸음을 해 나올 정도) 그분을 사별하고
삼남매를 키워 출가시켰고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님 공경은 지금도 지극정성
이다.
임을 보낸 뒤 肉情의 슬픔을 시로 형상화 한 작품이 수도 없이 많다.
아픔을 애절토록 느끼고 있으나 감상적이 아니며 자기를 지키기 위한 고
뇌와 또다른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 같음을 엿볼 수 있겠다.
이별을 딛고 서기 위해 시에 더욱 몰입했고 자신에게 엄격함은 애처롭다
못해 격렬해 보이기도 하다.
박선생님은 고뇌하는 삶을 오직 시로 인하여 구원 받고자 노력하는 사람
이다. 그런가 하면 물질 위주의 인간에게나 망가져 가는 자연에 분노하여 곧
잘 목소리 높여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아무쪼록 아름다운 슬픔을 조심스럽게 절제하면서 삶이 우리의 존재에 뚜
렷하며 투철한 명목을 남기되 황량한 들판에 혼자만 팽개쳐졌다는 허무를 잠
재우기 바란다.
맏언니 같은 성품과 완벽하려는 노력, 작품에 대한 정열, 교육자로서의 위
대한 스승상을 덧입어 나의 끝없는 부러움과 질투를 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