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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2000년 [시-장승진] 할머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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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14회 작성일 05-04-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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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기억


할머니 치마 앞으론
평생 두드리고 부벼 빤 빨래감들이
그 더러운 물이 가득 흘러갑니다
설거지 그릇이며, 긴 사래 엎드려 김매던 조막 호미,
장사하러 오르내리던 삽다리 고개 광주리들,
올망졸망한 자루들, 이웃들, 동기간들,
그 원망, 미움, 측은함, 동정심,
다들 입 속에 사연을 담고
터질 듯 부풀어 함께 떠내려갑니다

할머니 기억의 창고 속에는
아직 잊지 못할 고생들로 빼곡합니다
그래서인지 틈만 있으면 술 술 술
옛 얘기 쉴 새 없이 흘러나옵니다
너무나 선명해서
다른 일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리 오랜 세월 빨았는데도
색도 빛도 바래지 않은 기억들
그냥 다 털어놓으시라고
난 말없이 듣고 앉아 있는데
앉기만 하면 잠드시는 가벼운 몸인데도
할머니는 그 서러운 기억들 위에서
살아 힘을 추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