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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산문-최재도]오후 세 시, 그러나 다시 시작해야 하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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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20회 작성일 05-04-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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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가 일생 중 가장 규칙적으로 생활하던 시절은 군대생활할
때일 것이다. 일찍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청춘을 바치면서 우리는 기계적
이라 할 만큼 철저하게 시간표를 준수했다.
해군에서는 일과를「과업」이라 칭하는데, 아침 여덟 시부터 열두 시까
지를「오전과업」이라 하고, 낮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를「오후과업」이라
부른다. 기상직후부터 여덟시까지를 조별과업이라 하고, 다섯시 이후부
터 취침 전까지의 일과를 석별과업이라 한다.
그 무렵, 나이 오십에 다다른 한 부사관의 면역식에 참가했다. 일반적
으로 현역에서 제대할 경우 예비역으로 역종이 변경되므로 이를 전역(轉
役)이라 하는데, 그는 이미 예비역조차 편입될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으
므로 면역(免役)이 되었다.
그는 퇴임사에서 자신의 인생 과정을 과업 시간에 비유하여 자신의 인
생이 이제「오후 세 시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한평생 군에 몸바쳐 온
그로서는 별다른 기술도 없었고, 그래서 은퇴하고 나면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도 힘들 터였다. 그렇다고 그냥 남은 生을 놀면서 보내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던 것이다. 그것을 그는「오후 세 시」라 표현한 것이다. 어떤
일을 끝내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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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오후 세시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그 후 나는 인생의
전환기에 설 때마다 면역식장의 그를 떠올리며, 내가 몇 시쯤에 와 있는
지 점검해보곤 하였다. 사회활동을 시작한 때를 오전 여덟시라 하고, 현
업에 종사할 수 있는 마지막 때를 오후 다섯시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몇
시쯤에 와 있는 것일까.
나 역시 새벽 일찍 길을 나섰으나 매양 방황했고 잔꾀를 부리며 게으름
만 피웠다. 인생의 정점을 지날 때까지 그렇게 덧없이 보내다, 결국 오후
늦은 시간이 된 지금에야 원점에 되돌아 와 있다.
회한과 초조함, 공허감과 자책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젊은 시절 지나치게 소모적인 일로 재주를 낭비했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그 많은 시간을 거쳐오는 동안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사
실이 안타깝다. 지금쯤은 실적을 자랑해야 할 터인데 쌓아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초라하기 그지없고, 남은 시간과 남은 재주도 이제는 별로
없으니 한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위나 부 혹은 명성 같은 세속적 성과는 그렇다치더라도, 인격적 성취
나 예술적 성과도 전혀 이루지 못하지 않았던가. 대체 나는「오전과업」이
진행되는 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고, 어쩌자고「오후과업」이 이렇게 진행
될 때까지 방심하고만 있었을까.
신이 나에게 부여한 사명을 잊고 이토록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니 응징
받아 마땅하다. 시간을 낭비하고 청춘을 허비하였으니, 빠삐옹의 말처럼
나는 죄인임에 명백하다.
오후 세 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명백히 늦은 시간이다. 하지
만 나는 새로 시작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지상에 머무는 동안 세
상으로부터 진 빚을 다소나마 갚으려면 그것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
고, 또한 그것이 신에게 속죄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비록 성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던 삶을 끝까지 추구했다는 자부심만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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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지 않으면 강을 건널 수 없다는 걸, 나도 안다. 설령 중도에서
과업시간이 종료되어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일단 배를 타고
나루를 떠날 것이다. 강 건너 저 곳이 내가 종내 다다라야 할 곳이라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배 타기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