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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산문-강호삼]이국의 여인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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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82회 작성일 05-04-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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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이르크츠크에서였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바이
칼호 주위를 관광하기 위해 혼자서 밖으로 나왔다. 호텔 현관을 나서자
키가 내 머리 하나만큼 더 큰 금발의 러시아 여자가 내 뒤를 따라 왔다. 여
자는 분명 나를 목포로 하고 있었다. 곁눈질 해 보니 30대 중반의 가정주
부로 보이는 나이 든 여자였다. 호텔 주변에 여자가 있다는 사전 이야기
를 들었던 터라 별로 당황하진 않았지만 여자를 따돌리기 위해 걸음을 빨
리 했다. 한참을 더 따라 오던 여자가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가치 기준이 서구화 되다보니 미인의 기준도 서구화되어 열녀 춘향이
나 아내로써, 또 어머니로써의 표상인 사임당 같은 우리의 고전적인 미인
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 가는 것 같다. 나의 시각도 어느 사이 서구화되
어 버린 모양인지 여행 중 만난 러시아 여인들이 한결같이 미인들로 보였
다. 일행들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모양이다. 귀국 길에 일행 중 50대
초반인 여류 한 분이 거리와 공원에서 만난 러시아 여자들에 대한 감상이
재미있었다.
<내가 만약에 남자였다면 강간이라도 하고 싶었다.>
표현이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 만큼 러시아 여인들이 아름다웠다는
말이다. 나도 그 여류의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이긴 했지만 나는 러시아
체류 3일 동안 러시아 여인을 강간도 하지 않았고, 밤에 한 시간이 멀다하
고 오는 달콤한 러시아 여인의 전화 유혹을 물리쳤다. 그리고 귀국을 해
서는 후회했다. 오랜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를 받아들
여만 했던 가난한 나라 러시아. 6.25 전쟁을 치른 우리의 누이들이 그랬
던 것처럼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어, 거리로 나온 그 러시아 여인에게 50
불이나 100불은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내가 무슨 열부라고 그냥 돌아오
다니.
바이칼 호수를 배로 관광하면서 조약돌에 물감을 칠해 생선처럼 만든

조악한 작은 기념품을 하나 샀다. 아무리 기웃거리고 둘러보아도 그런 것
밖에는 마땅히 살 것이 없었다. 도대체 팔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인 것 같
았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러시아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지금
의 그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톨스토이와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를 배출
한 나라가 러시아다.
삼일동안 러시아의 이르크츠크에 머물다가 다시 에어로 플로트 러시아
제 쌍발 프로펠라 비행기편으로 몽고의 울란바트르로 돌아왔다. 하루 밤
을, 다시 러시아로 가기 전에 묵었던 징기스칸 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이
튿날 일행들은 먼저 떠났다. 나는 몽고에 다시 혼자 남게되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비행기 좌석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공항에서 귀국하는 일
행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만츄리아라는 곳을 관광했다.
저녁 일찍 잠을 청했다. 어제까지는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오늘밤은 혼
자였다. 호텔은 김대중 대통령이 왔을 때 묵었던 몽고에서 최고급인데도
저녁에 전기가 나갔다. 한 밤중 잠결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
를 들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잠에
취해 팬티바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갔다.
-누구십니까?
무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순간 이곳
이 호텔인줄도, 그리고 내가 팬티 차림이라는 것도 잊고 문을 열었다. 문
밖에, 반라의, 얼굴이 둥그런 보름달 같이 넓적한 몽고의 젊은 여자가 빨
간 선홍의 루즈 칠한 큰 입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분장을 한 피에로가 내 앞에 서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잠시 후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손을 내 저으며 황급히 문을 닫았다. 침
대로 돌아오며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그리고는 잠을 이루지 못했
다. 또 여자를 그냥 돌려보낸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내일 귀국하면 집사
람에게 단단히 보복(?)하리라고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