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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산문-강호삼]혼자서 가는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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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16회 작성일 05-04-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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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여름이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직업도 없이 잠시 서울에 머
물고 있을 무렵이었다. 일자리를 잡지 못해, 사글세나마 반반한 방 한 칸
을 얻을 수 없는 처지여서 하루종일 다리품을 팔아 동대문 부근의 창신동
산동네에, 한 사람이 누우면 방이 꽉 차는 다락방 비슷한 쪽 방 하나를 다
달이 월세만 내는 조건으로 얻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잠만 자고 일자리
를 찾아 온 서울 바닥을 헤집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일요일이었다. 그렇게 어려웠던 와중에도 무슨 여유가 있었던지 같은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대학생과 함께 뚝섬유원지로 수영을 갔다. 지금
은 한강에서 수영이 금지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동해나 서해로 해수욕을
가지 못하는 서울 사람들이 뚝섬으로 가서 보트도 타고 수영도 할 수 있
었던 시절이었다.
뚝섬에 도착하고 보니, 요즘의 여름 유명 해수욕장만큼이나 물놀이를
즐기려 나온 서울사람들로 복작거렸다. 두 사람은 해수욕 복으로 옷을 갈
아입고 선착장으로 가서 보트를 빌려 대학생을 보트의 앞쪽에 앉게 하고
내가 보트의 노를 저었다. 그리고 강 한 가운데까지 가서 보트를 대학생
에게 맡기고 물 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내 수영 실력이라는 것이 시

골에서 막 배운 개헤엄 정도였지만 그래도 갈아 앉지 않고 이 삼백 미터
는 헤엄 칠 수 있었다. 물 속으로 뛰어들고 보니 물살이 매우 세었다. 하루
전에 강원도 쪽에서 비가 많이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물
도 누런 흙탕물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
줍잖은 수영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채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 지쳐버
렸다. 기운이 다 빠져 눈으로 급히 타고 온 보트를 찾았다. 다행히 보트는
삼십미터 저쪽에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보트를 내 곁으로 저어 오도
록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보트에 있던 대학생이 낭패한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저 보트 저을 줄 몰라요.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절망감을 나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
억하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보트 쪽으로 헤엄을 쳤지만 힘만 더 빠졌다.
몇 번이나 물 속에 잠겨 흙탕물을 잔뜩 마셨다. 보트는 물살에 밀려 자꾸
만 멀어져 가고있었다.
<이제 죽었구나.>라는 절망감은 이내 전율을 동반한 두려움으로 변했
다. <이대로 개죽음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팔 다리를 내 저으며, 가라
앉는 몸을 추슬러 다시 수면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십
여 미터쯤의 거리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는 보트가 보였다.
<도와 달라>고 다급하게 소리치자 천만 다행으로 그 보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몸을 돌려 보트 쪽으로 다가갔고 그 경황 중에도 보트가
옆으로 기울어 전복되지 않도록 이물 쪽으로 돌아가서 배밀이를 해 몸의
상체를 보트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 동안 그런 자세로 가쁜 호흡을 몰
아 쉬면서 피로를 풀었다. 얼마만큼 기운이 회복되자 보트를 몰아 온 사
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서 저만큼 흘러가고
있는 내가 타고 온 보트를 향해 헤엄쳐 갔다.
그 날 이후,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한강에서 죽을 번했던 그때
의 절망스러웠던 상황을 생각하곤 했다. 너무나 끔직하고 숨이 꼴깍 막히
는 일이어서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 일로 인해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교훈 하나를 실제 몸으로 터득했다.
<살아간다는 것, 다시 말해서 삶이라는 것은 등대나 섬 하나 없는 망망
대해를 혼자서 외롭게 헤엄치는 일과 같다>라는……
지금까지 한 세상 살면서, 항상 나는 내가 삶이라는 바다에서 힘이 빠
져 더 이상 헤엄 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
라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래서 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어떤 일에서 던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번 번히 물을
들이켰고 물 속으로 갈아 앉을 뻔했던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이제 웬만큼 나이도 들고 살만큼 살았는데도 그 두려움은 여전하다. 지
금도 망망대해를 혼자서 외롭게 헤엄을 치고 있는 기분이다. 단지 상황이
다르다면 그때처럼 절박하지 만은 않을 뿐이다. 그건 살아 온 연륜으로
해서 이제 어느 정도 삶에 대한 체념이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