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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시-지영희]우리를 이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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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82회 작성일 05-04-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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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말했다
친구는 서로 사랑하는 거지요
붉은 눈동자를 꿀꺽 삼키며 자리로 돌아가
살그머니 옆짝을 흘긴다

한 때는 이름만 들어도
세상이 가볍게 내 안에 함께 하는 적도 있지만
온갖 그림자만 가득 들어앉기도 한다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갈증이다
계절이다 추위다 외로움이다
아픔이고 죽음이다

녹슨 자전거 뒤에
납작하게 편 재활용 상자를 꽁꽁 묶어 실은 낯선 할아버지와
웃음 띤 할머니의 마주하는 눈빛에
밀차에 실린 폐신문 뭉치로 떨어진 은행잎 몇 장이
노랗게 익어간다

반대편으로 스친다
우리를 삶으로 이어 주는 것은 잊혀지는 시간이다
잠시의 따스함도 신호등 불빛을 기다리다
미처 다 건너지 못하는 그림자에 깔려
빨간 신호 속으로 잊혀지는
혹은 긴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