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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시-장승진]가을 은사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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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17회 작성일 05-04-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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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린 가을
밤이 오는 길가에 은사시나무로 서서
나무잎 옷자락마다
잔뜩 부푼 바람을 안았다가
쏴르르 쏴르르 쏟아낼 수 있었으면

원망도 기대도 투정도
남김없이 비워내고 다시 으스스 몸 떠는
은사시나무로 서서
불러도 오지 않는 한 여자에게
복수할 수 있었으면

마르는 줄기와 벌레 먹은 잎사귀
추해지기 전에
말없이 사라지리라 작정한
깃털처럼 가벼운
은사시나무로 서서

돌아오지 않는 쓸쓸한
과거와 돌덩이처럼 매달려
마냥 거추장스런 현재와 함께 투신하여
바람을 벗고 떨림을 벗어나
조용히 썩어갈 수 있었으면
내 그리움에 복수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