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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시-이충희]아주 오래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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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31회 작성일 05-04-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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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양양을 수복지구라고 불렀다.

인문공화국 만세라고 쓴 낙서를
발견하고 일도 못보고 뛰쳐 나왔던
음침한 공중변소가 있었지 싶던 자리엔
고층건물이 들어섰고
연어축제를 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토종 달맞이꽃이 펑펑 터지던 냇둑은
말끔히 포장되어 차가 달리고 그랬다.

양양초등학교에 첫 부임한
나는 국군에게 윤간 당했다는 소문이 쉬쉬했던
그녀가 차린 책방에 가끔 들러
책을 사면서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얼핏얼핏 스치던 그늘을 곁눈질 했다.
철딱서니 없게도 비겁하게도.

명환이가 졸업식날 교무실 내 책상 서랍에
쑥물든 <렌의 哀歌>를
언제나 저를 사랑해 주시는 이선생님께라고
먹을 갈아 썼다
나는 아주 오랫 동안 그 책을 사려 애썼을
빈 주머니가 그 아이 불거저나온 등에 겹쳐
양양을 눈물겹게 한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