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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시-김영섭]눈 사래 깊어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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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98회 작성일 05-04-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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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사래 깊어진 그믐 밤 내외하자던 묘령의 계집을 떠올리다
소름끼치는 날개를 퍼덕였으나 울창한 참나무 숲을 가로질러
도토리 계곡을 내쳐 질주하지 못했다.
회오리바람에 방패연 끊어지고 새끼발톱이 동상으로 뭉툭해
진 산비둘기 딸꾹질에 놀라 날아간다. 배꼽과 뒷동산이 시나
브로 높아져 설원의 신경질적인 입김으로 치근대다 돌아눕던
아내는 조반의 식성을 궁리하는 잠자리 구상보다 새벽의 유
순함이 나무랄 데 없는 것을 감지한 사내는 이제 코를 골기
시작한다. 중년은 고독하기보다는 어설프다. 감싸 안을 때마
다 대문은 튼튼하고 볼일이다. 겨울이 추운 것은 동장군이 아
니라 바람인 것을 잘 아는 아내는 쏜살같이 하수구로 달리는
물소리를 부추기며 아이들의 도시락과 채팅에 도전장을 내
민다. 도전이라기보다 우유와 사과가 건네 지고 딸아이는 투
정의 꼬투리를 지우느라 분주하게 드라이를 시작했는가 보
다. 자기 스스로 컸다는 생리로 치부하는 버거운 저걸 어느
사내놈이 눙칠건가 걱정이다.
교육열이 어머니 몫으로 던져지자 가정경제권을 쟁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묘령의 계집이 손을 만져지는 순간 조반 드
셔야지요? 아내의 젖은 손이 가슴속으로 쑤욱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