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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시-권정남]열리지 않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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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56회 작성일 05-04-0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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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열리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열어보기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 관심밖에 있던 것들입니다.
한 번도 펼쳐보지 않는 시집들과
문갑 위 열지 않는 몇 개의 양주병
선물로 받은 독일제 만년필…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빈 컵들
원시의 늪처럼 닫혀 있는 그대 마음
그런 것들이 무관심 한 듯 하면서
나를 지켜보는 소중한 눈빛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열릴 듯 닫혀있는 것들에 대한 기다림
어쩌면 내 삶의 껍질이 벗겨질 즈음
나와 내가 마주 앉은 시간에
피륙을 벗겨내 듯
이 세상 열리지 않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분갑 위의 양주병을 따고
빈 잔에 찰랑거리는 고독을 채워놓고
내가 나를 위해 건배를 올리다가
열리지 않는 것들을 열어놓게 하고는
독일제 만년필로 무한정 푸른빛 시를 쓰다가

그러다가
평생을 두고 사랑하는 이의
마음은 끝내 열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